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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첫 ‘세일즈 원장’이라 불러주세요”
내달 취임 2주년 이승신 소비자보호원장

이승신(51) 소비자보호원장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19년 소비자보호원(소보원) 역사상 최초의 여성원장이 그것 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212개 정부산하 기관의 여성기관장은 그녀를 포함해 3명뿐일 정도로 공공부문은 여전히 ‘맨파워(manpower)’가 월등한 영역이다. 그렇기에 2004 년 9월 취임 당시 이 원장은 소보원 최초의 ‘여성’원장이자 ‘ 공모제’원장으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취임 2주년을 눈앞에 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보원장 실에서 만난 그녀는 인터뷰시간 내내 취임 이후 소보원의 변화상 과 아쉬움, 비전 등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여성 원장이라고 느 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한 직원의 말처럼 그녀에게서 ‘ 여성스러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중학교 교사 →미국유학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원 →대학교수 →소비자학회장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그녀의 이력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개척하려는 도전정신이 엿보였다.
■ ‘두집 살림’과 ‘공기업 벽허물기’
여성원장으로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원장은 “학 자 출신으로서의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여성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바깥일이 바빠서 집안살림은 어렵겠다고 묻자 “집안 살림도 다 한다. 두집 살림 하는 것이 아마도 남성원장들과는 다른 점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녁 9시쯤 퇴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남편과 아들 밥 챙 겨주는 거예요. 소보원장 되고 나서 대접이 다소 부실해지다 보 니 불평이 대단합니다. 시댁에서도 소보원장이라고 사정 봐주는 건 절대 없어요. 가끔은 충북 옥천의 시댁도 찾아 뵙고 며느리 노릇도 합니다.” 바깥 살림격인 소보원 경영은 더욱 어렵다고 했다.
“30년 넘게 학교와 민간에서 소비자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공공 기관장으로서의 역할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더군요. 학생, 교수시 절에는 공부만 하면 됐는데 여기 오니 250여명의 직원과 정부, 소비자단체, 학계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취임 초기 공공기관 특유의 권위적인 벽허물기를 위해 그녀가 펼 친 스킨십 경영은 보수적인 공기업의 조직문화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처음 제가 왔을 때 엘리베이터에 직원들이 같이 타지 않으려고 피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소 위 ‘떼메일’을 보내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하자고 호소했 는데 답장이 단 한장도 안오더군요.”
이 원장은 가장 먼저 전 직원을 용인에 있는 자택으로 초대해 저 녁식사를 대접했다. 집무실 문은 항상 활짝 열어놓았고, 직원들 의 워크숍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체질상 맞지 않아 입에도 대 지 않았던 술이지만 직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폭탄주도 배웠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은 250명 직원들의 이름과 신상을 줄줄 욀 정도다.
“교수 시절에는 제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무조건 밀어붙였습니다. 그런데 조직이라는 데는 많이 다르더라고 요. 아무리 옳은 것을 지시하더라도 직원들의 정서와 조직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최고경 영자(CEO) 입장에서는 직원도 고객이라는 사실을 폭탄주를 배우 면서 터득한 셈이죠.” 그녀의 노력은 결과로도 나타났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전년보다 6.5점이 높아진 71 .5점을 받았고, 고객만족을 위한 노력지표는 무려 25점이나 상승했다.
■ ‘급식사고’와 소보원
CJ푸드시스템의 사상 최대규모 학교 급식파동으로 화제가 넘어오면서 자연히 소보원의 조사권 문제가 거론됐다. 소보원은 현재 소비자들의 불만이나 피해사항을 접수받고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피해대응과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 다. 이 원장은 “소보원의 공정거래위원회 이관을 계기로 두 기 관의 소비자 보호기능이 결합돼 시너지효과가 일어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소보원의 법적 권한이 제한돼 있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 업체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못한다는 한 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소보원이 조사권과 함께 제재권한 까지 갖춘 공정위와 결합하면 소비자 정책집행의 실효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소보원의 위상이 강해지는 것이 기업 입장에선 달갑지 않을 것이란 지적에 대해 ‘소보원은 기업과 소비자의 중재자’ 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녀는 “소보원에 소비자의 피해가 접수 돼 사실로 밝혀지면 일단 기업에 자율규제를 요청한다”며 “소 비자주권 강화가 결국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사실을 최근 기업들 이 인식하면서 기업과 소보원 양자간에도 신뢰가 형성돼 가고 있 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학교급식 문제 역시 소보원의 관할 밖임을 안타까워했다. 현행 소비자보호법에는 공공서비스 영역의 소비자 피해는 소 보원 관할이 아니다. 학교 역시 교육인적자원부 산하이기 때문에 소보원으로서는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이 원장은 “소 보원의 피해구제영역을 공공서비스 분야까지 확대하는 것이 남??임기 최대의 과제”라고 말했다.
■ “소보원 최초의 세일즈원장으로 불러주세요”
소보원 최초의 ‘여성원장’이라는 표현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그녀였지만 최초의 ‘공모원장’이라는 사실에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 원장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이 공모를 통해 뽑힌 원장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고 했다.
“공모라는 게 제가 원해서 시작했다는 표찰 같은 거예요. 힘들 때도 불평없이 일해야 하는, 어찌보면 물러설 곳이 없는 배수진 이나 다름없는 셈이죠.” 그렇다면 최초의 공모원장은 전임 원장들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그녀는 자신을 소보원 최초의 ‘세일즈원장’이라고 불러 달라 고 했다. 다른 공기관이 그렇듯 소보원 역시 예산배정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녀는 기획예산처의 담당 사무관, 서기관을 직접 찾아가 예산배정을 호소한다고 했다. 지난주 휴가중임에도 불구, 두번이나 기획예산처를 찾아갔다. 장·차관 출신의 전임 원장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경제부처 장·차관 출신 원장님들이 물론 권위면이나 파워면에서 더 낫겠죠. 하지만 체면 때문에 예산 늘려달라는 호소를 하기 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예산배정에서 소보원은 항상 후순위로 밀려 있었죠. 정부입장에서도 마냥 예산을 늘려주 기 곤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비자업무의 중요성을 설득해 가며 합리적인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소보원은 소비자 주권강화를 위한 기관이라는 점을 특 히 강조했다. 그녀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훨씬 역동적인 한국 소비자의 성향이 소보원에는 큰 힘이 된다”며 “소비자 주권강화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의식향상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 했다.
“악덕 상술을 구사하는 사업자에게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은 적 을 알고 대처하는 것입니다. 소비자 피해의 80%는 공짜상술에서 발생합니다. 나머지 18%는 충동구매, 2% 정도만 불가항력적인 소비자 피해입니다. 사업자가 사은품이나 경품을 공짜로 준다고 하 면 이렇게 외치세요. ‘너나 가지세요’라고.”
(김상훈기자 shkim@munhwa.com)
[출처 : 문화일보, 2006.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