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 EU, 우리나라 등 세계 각국에서 ‘통신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을 둘러싼 논란이 이해당사자 간에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통신망 중립성’이란 ‘통신망을 통해 전송되는 모든 전자적 통신은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단말기 제공사업자 및 최종이용자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즉 통신망 사업자는 통신망을 지나가는 모든 트래픽(통화량))을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통신망 중립성’은 이용자, 즉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개념과도 연결되어 있다. 소비자가 데이터 이용에 대한 정당한 요금을 지불했다면 어떠한 콘텐츠나 서비스를 이용하든 그 이용이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점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2005년에 제시한 ‘통신망(인터넷) 중립성’ 원칙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FCC가 제시한 4대 원칙을 보면 이용자는 원하는 합법적인 인터넷콘텐츠를 선택해 접근할 수 있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원하는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으며, 망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합법적인 기기를 인터넷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고, 망제공사업자들,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사업자들, 콘텐츠제공기업간에 경쟁에 따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들릴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으로 보이는 ‘통신망 중립성’이 왜 이처럼 최근에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걸까 20101년부터 스마트폰, 태블릿PC이 대중화되면서 모바일 데이터의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과부하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특정 서비스에 대한 통신망 접속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통신망 중립성’ 논란은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2011년초 우리나라의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은 2010년 기준으로 2015년까지 15배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이는 2015년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2,200만대, 태블릿 70만대를 가정한 수치로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올해 안에 2,0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고 데이터무제한 정액요금제 도입 후 데이터 이용량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은 앞으로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고 ‘통신망 중립성’ 관련 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통신망 중립성’ 관련 논란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등장하고 스카이프, 바이버, 왓츠앱, 카카오톡 같은 무료 문자서비스, 무료 인터넷 전화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기존 통신사의 수익 모델이 급속히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면서 심화된 면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는 국내외 ‘통신망 중립성’ 관련 논란의 주요 쟁점이 기존 통신망사업자와 무선 인터넷 콘텐츠 제공사업자 간의 통신망 고도화 비용 부담 문제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이들 사업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 점은 보다 명백해진다. 기존 통신망 사업자는 무선데이터 이용량이 급증하면서 무선망 확충을 위한 투자비가 늘어나고 있다며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앞으로 콘텐츠 제공사업자도 통신망 고도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콘텐츠 제공사업자는 이미 전용회선료를 부담하고 있고 인터넷 발전에서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의 혁신이 기여한 바가 크다며 ‘통신망 중립성’ 원칙은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각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통신위원회가 2010년 12월 21일 '오픈인터넷 규칙'을 채택하였으나 미국 거대 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과 메트로PCS가 즉각 규칙 무효화 소송을 제기하였고,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통신사업자들이 인터넷 전화 서비스인 ‘스카이프’ 등 경쟁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추가 요금을 물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보다폰, T모바일 등 통신사업자들은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데이터 과부하에 대한 대책으로 통신망을 4세대 통신망은 프리미엄망으로 구축한 뒤 사용료를 지불하는 기업에 고품질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기존 3세대망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투트랙(two track)제도, 무제한정액제의 맹점을 이용하여 데이터 트래픽을 유발하는 헤비유저 과금방안 등 다양한 해법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통신망 중립성’ 논란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이용자 보호를 위한 기본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데이터 트래픽 과부하를 해결하기 위한 통신망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 사업자 간의 대립 공방에서 이용자 즉 소비자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최근 통신망 사업자들이 이용자의 동의없이 스마트폰 무료통화 애플리케이션 사용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가 제시한 4대 원칙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