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가격이 25주 연속 최고가격을 경신하며 상승하자, 국제원유가격이나 환율은 하락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오르기만 한다는 소비자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TF까지 꾸려가며 원가공개와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지난 3일 업계 선두주자인 SK에너지는 휘발유와 경유를 주유한 소비자에게 ℓ당 100원씩 가격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GS칼텍스도 가격인하 의사를 보였고 나머지 업체도 가격인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격인하 방식이 재미있다. 사실 오늘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석유제품 가격인하가 아니라 가격인하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번 가격인하는 판매가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할인청구하거나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즉 주유소 판매가격에는 변함이 없고 카드결제 고객에는 청구금액을 할인해주고 현금결제 고객에게는 자사 포인트인 OK캐쉬백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OK캐쉬백 포인트는 만원이상 적립되면 현금으로 환급받거나 주유소를 포함한 전국 7만개의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현금이 아닌 포인트로 돌려주는 방식이지만 현금과 동등한 효력이 있으므로 정부와 소비자는 가격인하로 받아들이고 있다.
포인트가 현금처럼 취급되는 다른 사례가 더 있다. 하나은행은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 포인트를 예금과 적금으로 받아주는 상품을 출시하였다. 신용카드 1포인트가 중앙은행이 발행한 1원으로 바뀌어 예금이 되고 이자도 지급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품은 하나은행 뿐아니라 신한은행에서도 출시되었다. 신한은행은 이자가 무려 4%이다. 일반 예금이자보다 높다.
포인트나 마일리지가 중앙은행이 발행한 은행권과 매우 유사하거나 동일한 수준의 화폐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례들이다. 포인트나 마일리지가 처음부터 중앙은행권과 동등한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기업입장에서는 포인트 발행비용보다 고객유인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포인트 발행자간 경쟁에 의해 진화된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중앙은행권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포인트의 신규 발행규모가 최소한 연간 2조원을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포인트나 마일리지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소비자 소유의 화폐이다. 다만 단위가 ‘원’이 아닌 ‘포인트’일 뿐이지 사실 소비자의 지갑에 든 현금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은 규모의 새로운 금융시장이 형성되었고 활발히 유통되고 있는데 이를 규제할 법률적 근거는 미약한 편이다. 지급결제기능과 범용성을 갖춘 포인트를 규제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이 있긴 하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례로 금융감독원이 A사의 항공마일리지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소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SK의 OK캐쉬백 포인트는 전자금융거래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 이와 유사한 다른 포인트는 법적용을 받고 있지 않아 형평성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오래동안 민원이 제기된 항공마일리지에 대해 공정위가 조사에 나섰지만 유효기간 연장이라는 업계자율시정으로 심의절차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 포인트나 마일리지에 대해 정부의 통제가 먹혀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금융위원회는 2008년 포인트 규제를 강화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으나 해당기업과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요즘 TV광고의 다수는 포인트 및 마일리지 광고이고, 백화점, 할인점, 쇼핑몰, 정유사, 음식점까지 포인트를 발행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는 포인트나 마일리지를 자신 소유의 화폐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은행통장에 있는 돈이 내 돈 인 것처럼 내 이름으로 적립된 포인트도 내 돈이다. 포인트나 마일리지에 대한 소비자의식이 바뀔 때 포인트를 진정으로 화폐로 인정하는 제도가 탄생할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오후에는 잠시 짬을 내어 어디에 얼마의 포인트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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