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는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이 현실적으로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 소비자의 피해를 양산하고 시스템적 리스크(systemic risk)를 유발하며 시장 신뢰가 상실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미국 정부의 미흡한 금융소비자보호 규제로 인해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화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금융소비자의 피해는 물론 금융시장 전체로의 위기상황이 초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금융투자상품 관련 소비자보호를 위한 법률적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소비자보호가 형식적이고 실효성이 크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투자상품 관련(증권·자산운용 부문) 민원처리현황을 보면 2006년 2,990건, 2007년 3,583건, 2008년 3,661건, 2009년 5,074건으로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함에 따라 민원 발생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 가운데 수익증권의 경우 2008년 328건에서 2009년 1,244건으로 27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금융위기 재발 방지 및 금융투자상품 소비자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금융공급자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통제와 규제 중심 시각에서 소비자 중심의 시각으로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소비자를 보호하면서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소비자정책 시각에서 법적ㆍ제도적 개선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첫째, 신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승인제도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 금융상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조과정의 규제는 신상품에 대한 심사제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조과정에 대한 규제장치로 약관심사제도를 들 수 있다. 약관심사제도는 금융상품의 약관이 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은지 검사하는 기초적인 장치이므로 이 제도를 강화하여 안정성이 결여된 상품은 소비자에게 판매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약관심사제도가 다소 소극적인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면, 금융소비자보호의 강화 필요성이 있는 현 상황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심사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약관심사에 있어 충분한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외부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심사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금융상품의 심사 및 승인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규제당국이 가능한 한 명확하게 만들어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미리 지정해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불허하며 충족되는 경우 상품의 안전성, 불공정성 등에 대하여 면밀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최소한의 안전기준으로 재무경제학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는 VaR(Value at Risk)을 들 수 있다. VaR(value at risk)이란 "위험에 처한 가치"를 의미하며 여기서 "위험"이란 손실 발생의 위험이고 "가치"란 투자자의 전체 투자 자산의 가치 중 손실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가치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최악의 5% 확률로 투자상품의 손실액이 얼마라는 것을 제시하면 위험에 대한 인식이 보다 명확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VaR의 최대 장점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구체적 수치로서 제공한다는 데 있다. "신뢰수준 95%에서 펀드매니저 갑이 하루 동안 손해볼 수 있는 최대 금액은 2억원이다"라는 답변에서와 같이, VaR는 구체적인 손실 금액을 산출하는 위험측정치이다. VaR도 과거의 데이터에 의존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 등의 문제점이 있지만 중요한 금융 거래에 있어 항상 VaR 수치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부가하도록 하면 모든 소비자가 자신이 거래하는 금융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보다 중요한 정보를 갖게 되는 셈이고 이는 곧 보다 신중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승인 절차는 최대한 명확하게 설정해 두며 심사 결과 및 의견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어떤 상품이 불허되는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심사 주체들이 공개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불공정한 심사를 방지하면서 금융공급자들이 승인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불건전한 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금융혁신의 주체들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판매과정에서 설명의무 강화 및 적합성 원칙의 실효성 강화가 필요하다. 판매과정에서의 규제는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비자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된다. 판매과정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완화되도록 설명의무가 잘 준수되고 소비자가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적합성원칙이 잘 지켜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설명의무 이행에 대한 녹취 필요성이다. 금융소비자가 제기하는 분쟁에서 대표적인 분쟁이유는 불완전 판매이다. 즉,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부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구매과정에서 판매자의 요구에 따라 설명을 잘 들었고 이해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되고, 이것이 법적 소송에서 판매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매권유과정의 여러 가지 의무사항이 판매절차를 복잡하게 하여 많은 서류가 등장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소비자는 권유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판매자가 요구하는 곳에 서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설명의무 이행 여부가 분쟁에서 누가 책임이 있느냐를 가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므로, 설명과정을 녹취하도록 강제한다면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보다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적합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일률적인 기준이나 방법이 없는 만큼, 규제당국이 그것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시장참여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합성의 의미, 판단 기준과 방법, 판단에 필요한 정보 등에 대하여 이론적, 실증적 연구과정을 거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야 한다.
판매자가 상품에 대하여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신이 파는 상품을 판매직원이 제대로 모르는 경우에 대해서는 기관과 직원에 대하여 엄하게 처벌하여야 하며, 미스터리 쇼핑 등을 통하여 감시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 글 / 이상식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