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쫒기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존경하는 선배님의 부탁을 간곡히 거절하면서 ‘정말 미칠 지경으로 일에 치여 살고 있어요’라고 외쳤다. 선배님께서는 너그러이 봐주시면서 당신께서도 지난주 처음으로 ‘일하다 죽을 수도 있구나’라고 느끼셨단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만에 가장 아름답다던 단풍놀이도 하고 싶었고 그렇게 멋지다는 원빈의 영화 ‘아저씨’도 보고 싶었는데 다 놓쳤다. 선배님의 간단한 이메일이 좌판위에 놓인 내 손을 쉬게 만들었다. 눈은 모니터를 벗어나 창밖에 창백한 멋들어진 캠퍼스로 옮겨졌다. 나는 왜 창을 자주 보지 않는 것일까
학생들 교양과목에서 ‘행복한 명화를 읽기’라는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미술품 소비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로 했다. 미술품은 이미 주요한 투자대상으로 등극하였고 또 기막히게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미술품가격이 폭등하면서 소위 상류층의 기호생활이자 투자생활이 되었었다. 그래서 ‘왜 현대인은 미술품에 열광하게 되었는지’를 학생들과 토론해 보려던 취지였다.
그런데 그 동영상은 여지없이 내 선입견을 혹은 내 기대를 저버렸다. 명화란 무엇인가 세잔, 고호, 고갱, 피카소, 앤디 워홀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고 명화를 식별하는 방법 뭐 그런 것을 기대했건만 명화란 ‘나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그림’이라는 메아리만 돌아왔다. 그래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해 나에게 감동을 준 그림은 사람은 물건은 상품은
대답은 창밖을 보게되면서 만난 영화 ‘인빅투스(Invictus)’였다. 인빅투스는 라틴어로 ‘굴하지 않는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다들 보셨겠지만 흑인 대통령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과 백인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백인‘럭비’팀을 지원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에게 ‘인빅투스’를 던져주었다. 나는 인빅투스를 ‘버티기 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동안 빡빡하게 지내왔기 때문이었을까. 좀 더 버티자는 심정일뿐이다. ‘막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88만원 세대, 청년실업자들, 생활이 막연한 노인들, 힘겹게 혼자 버티고 살아가는 여성가장, 소년소녀가장들, 왕따당하는 사람들, 졸업을 앞두지만 진로가 막막한 4학년 대학생들 모두 ‘인빅투스’하길 바란다.
또 하나. 해골그림이 있는 명화들이 있다. 미술관에 가면 중세귀족 정물화속에 느닷없이 해골그림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화가들이 방탕한 세상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 즐겨 그렸다는 바니타스 그림이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그림을 올리지 못해 섭섭하지만 검색하면 해골이 그림에 아무런 맥락없이 그려져 있다. 이런 해골을 고귀한 인물들 옆에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인 즉 바니타스(헛되다) 그러니 지나치게 교만하거나 방탕하지 말지어다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참 재밌는 그림이면서 화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뭐 특별한 것 없을까하고 찾다가 결국 흥청망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보낸다. 지인들에게 ‘나 이런 사람이야~’하면서 잘난척도 하게되고 모임에 나갈 때 더 과시하고 싶은 충동이 많다. 하지만 중세화가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부유함, 권력, 유식함, 멋진 외모, 좋은 집안 자랑하지말라. 왜 바니타스!’ 지금도 인빅투스를 외쳐야 살아갈 수 있는 이웃들이 있기에 겸손한 연말이 되길 바란다. 정말 올 한해에 여러분을 감동시키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떠올려 보자. 그것을 통해 만난 사람들, 느낀 감정들, 보낸 시간들이 다시 몽실몽실 피어오르기를.... .

■ 글 / 김성숙 (계명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