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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새로운 소비자는 없다. [세상보기]
등록일
2010-11-10
조회수
6254
세상보기(393)
하늘 아래 새로운 소비자는 없다.
기자들의 세계에 “하늘 아래 새로운 기사는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껏 다뤄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주제의 기사가 나오기 어렵다는 뜻을 포함해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세상사 모든 것이 세월이 흘러도 별 새로운 것 없이 반복된다는 얘기가 아닌가싶다.
현대의 대표적인 소비분석가인 다비트 보스하르트(David Bosshart)는 그의 저서 「소비의 미래」에서 ‘새로운 인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비자’도 없으며, 다만 변화된 소비성향만 존재할 뿐이라고 하며 9가지의 소비자유형을 소개하였다. 그 중 5가지 유형(소비거부자, 가격중독자, 하락소비자, 억눌린 소비자, 모라토리엄 소비자)은 판매자 입장에서 볼 때 매상은 올려주나 이익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나머지 4가지 유형(소비중독자, 노스텔지어 소비자, 공룡 소비자, 반어적 소비자)은 판매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유형이다. 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사는 ‘소비중독자’나 구매선택의 홍수 속에서 새로운 상품보다는 자신이 과거에 갈망해 왔던 상품이나 강렬하게 체험했던 상품만을 선택하는 ‘노스텔지어 소비자’, 소득이 늘면 소비도 늘어나는 ‘공룡소비자’,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상표, 반어적 역설을 추구하는 ‘반어적 소비자’가 마케팅 분야에서 중요한 소비자 유형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 소비자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앞의 다섯 유형에 우선적인 관심이 간다.
필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유형은 ‘소비거부자-이방인’ 유형이다. 이들은 자신이 이미 소유한 상품에 만족하면서 더 이상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으려 하며, 소비보다 절약과 저축을 추구하는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자들이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게 하는 과잉소비사회에서 과연 이런 스타일의 소비자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이러한 소비자가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필자 생각엔 이 유형에 해당하는 소비자의 수가 적기 때문에 이방인이라는 부제가 부쳐진 것 같다.
또한 ‘가격중독자-저가 상품의 완벽한 사냥꾼’ 유형도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가장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사기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가격=상품’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이다. 이들은 유명브랜드도 선호하지만 가격을 최고로 따져 시간이 흘러 만족할 정도로 가격이 하락했을 때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다. 이 유형은 냉철하고 현실적이어서 가격의식에 오랫동안 단련된 독일 소비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 유형의 특성을 보니 필자의 독일인 친구가 떠오른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이메일로 포르쉐 자동차를 살 거라 했다. 부럽다는 답장을 한 후 수개월이 지나 어떤 모델을 구입했냐는 질문에 그 친구는 이제 겨우 구입할 모델을 정했다고 했다. 한국인이 보기에 심할 정도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며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는 그 후로도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인 다음 자신이 원하는 모델을 좋은 가격으로 구입하였다. 구입한 중고 포르쉐에 무척 만족해 하면서 자동차구입에 들인 시간에 대해 아까워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 그를 통해 몸에 배인 가격지향적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노동자나 회사원, 공무원 등의 전형적인 중산층에 속하는 ‘하락소비자’는 의료비나 교육비와 같은 고정 지출이 많아 소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원하지만 포기에도 익숙하다. 또한 노인 세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억눌린 소비자’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참으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소비자이다. ‘하락소비자’와 ‘억눌린 소비자’는 어찌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반응을 하는 소비자인 것이다.
한편 ‘모라토리엄 소비자’는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신상품을 성급하게 구입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안다. 급변하는 상품주기에 동조하지 않고 한 사이클을 뛰어 넘기 때문에 립 플로거(Leap Frogger)라 부르기도 한다. 신상품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반드시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점과 가격은 기다리면 하락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느긋하게 기다리는 유형이다.
당신은 어느 유형에 속하는가 반드시 다비트 보스하르트가 말한 어느 유형에 속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유형, 혹은 두 세 유형의 특성을 모두 보이기도 할 것이다. 9유형의 소비자를 모두 언급했지만 필자는 ‘소비거부자’와 ‘가격중독자’, ‘모라토리엄 소비자’의 특성이 적절히 뒤섞인 유형을 기대해 본다. 하늘 아래 새로운 소비자는 없다, 다만 변화된 소비성향만 존재할 뿐이며, 그 비율은 변화될 수 있다. 과거나 현재에 없었던 되기 힘든 새로운 소비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능한 현명한 소비자가 우리 사회에 더욱 많아짐을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