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몇 년 전 “농산물 가격폭락에 관한 단상”이라는 글을 소비자칼럼에 게재했던 적이 있다. 속이 단단히 찬 김장용 배추 한 포기 값이 천원 내외로 떨어져 가계 부담이 줄어서 좋지만, 무거워진 농심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방안들을 피력했던 것 같다.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국정감사장에 금(金)배추가 “증인”으로 등장하고, 언론매체에서는 배추파동의 실상을 소개하면서 관계당국의 여러 대응책을 소개하는데 바쁘다. 일부 인터넷매체에서는 한술 더 떠 정부의 4대강사업과 연관된 정치적 배경을 들먹이면서 배추파동의 진실찾기 게임을 하고 있다.
물론, 한포기에 1만5천원까지 올랐던 배추가격 고공행진의 배경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연초부터 시작된 이상기후는 원활한 채소류의 공급을 방해한 주된 원인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되었듯이 수급불균형을 틈탄 유통업자와 판매업자들의 사재기와 판매량조절과 같은 “악덕상술”뿐 아니라, 김장가격 폭등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의 조바심도 배추값 강세에 한몫 했다고 본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배추와 무 같은 농산물은 철저하게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그 가격이 결정되고, 또 일시적 공급량 변화나 판매방식에 따라 가격 등락이 유독 심한 품목이다. 다시 말해 ‘거미집 이론’(cobweb theory)이라는 경제이론으로 정립될 정도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시차(時差)를 두고 반응함으로써 나타나는 수급불균형과 큰 폭의 가격등락은 시장 현상의 하나이다.
멀리 볼 필요 없이 1년 전 이맘때와 김장철의 신문기사를 살펴보자. 배추 한 포기가 500원도 안되자 1년 농사를 갈아엎는 속 타는 농심을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필자가 소개했던 2006년말 배추가격 폭락 역시 그 전 해의 배추가격 강세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지난해 배추풍작으로 손실을 입은 상당수 농민들은 배추 대신 다른 대체 작물을 재배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줄어든 재배면적이 이상기후와 결합되어 올해의 금배추 파동을 가져온 것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시장활동 개입이 지나치면 득보다 실이 더 커질 수 있다. 배추와 같은 농작물의 경우 정부의 역할은 정확한 시장수요와 작황에 대한 예측과, 이에 근거하여 재배농민들에게 생산량을 적절히 조절토록 권고하는 수준이면 족하다고 본다. 정치권에서의 지나친 관심도 독이 될 수 있다. 배추가격 등락에 따른 농민의 손익이나 소비가계의 부담 부분은 기본적으로는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 시장에서의 정보를 통해 농민이나 소비자가 해마다 되풀이되는 배추가격 파동의 여파를 다소나마 비켜갈 수 있다면 우리 경제의 안정에도 상당한 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