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묘하게 설치된 거리의 구조물 덕택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스페어 타이어로 임시변통을 하고 나서 무참하게 찢어져 땜질도 못하게 된 타이어를 보고 결국 새 타이어를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디서 새 타이어를 구입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내게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학교 앞 홍릉 근처에 “신발 값보다 싼 타이어”라는 현수막을 걸고 타이어를 파는 집이 있는데 그 집에 가서 물어보니 10만원 남짓의 비용으로 타이어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집 앞에 있는 XX자동차 서비스 점에서는 15만원에 가까운 비용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양 곳 모두에서, 타이어는 겉으로 보기에 똑 같은 회사의 똑 같은 브랜드의 것이었다. 결국 XX자동차 서비스에서 타이어를 교체했지만 마음은 별로 편치 않았다.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점은 비싸게 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홍릉 타이어 점의 아저씨를 믿지 않은 데 있다. 가게도 허름하고, 아저씨도 그럴듯한 제복을 입지 않고, 타이어도 막 쌓아놓고, XX자동차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걸어놓지 않아서, 나는 그 아저씨가 말하는 것을 쉽게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역시 그럴듯하게 차려 입고, 그럴듯한 자격증이나 브랜드를 내세워야 남을 믿는 얄팍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업계의 실상에 대해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 했을지도 모르는 그 홍릉 타이어 점 아저씨보다 내가 인격적으로 더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성실하게 장사하는 사람들은 설 땅을 잃어버리고, 내용보다는 모양을 이용해 장사하려는 사람들의 입지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더욱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런 모양내기 사람들이 늘 맞지도 않는 논리로 마케팅이라는 수식을 부친다는 것이다. 사실 나의 마케팅적 사고에 따르면, 나는 XX자동차 서비스 점이 아닌 그 홍릉 점에서 타이어를 구매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자그마한 생활 현장에서도 내 사고대로 행동을 못했고, 그래서 그 일만 생각하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세상에 정보를 이상하게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브랜드나 모양을 가꾸어 증명하기 어려운 것을 사실인 듯 냄새를 풍겨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생소한 단어와 계산법을 앞세워 음지의 사채업자보다 더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6, 70년대에는 종로 단성사 근처나 을지로 국도극장이나 계림극장 근처의 다방구석에 이상한 사장님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부도수표에 불과한 휴지조각에 서로 이서해 가며 어리숙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끌어들여 쉽게 돈을 벌고자 하였다. 사실상 오늘날의 투자은행 개념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타이어 구매를 통해 나 역시 무지하고 어리숙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설령 좀 속더라도 남을 믿는 자세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더하게 되었다. 또한 브랜드나 모양을 가꾸는 쪽에 돈을 더 주기보다 투박하고 삶에 찌든 쪽을 선택해, 혹시나 좀더 속더라도 돈을 못 벌고 어렵게 지내는 사람에게 속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