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연휴는 가을방학이나 다를 바 없이 길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손꼽아 기다려온 중국 내부지역 실크로드 여행을 이번 가을방학을 이용하여 하기로 했다. 중국내 실크로드 여행은 중국 한~당 시기의 수도이었던 시안(西安)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 국경지역에 가까운 우루무치에서 그 막을 내리는 그리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옛날 실크로드 여정에서 형성된 도시를 징검다리 건너듯이 살펴보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가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야간 열차여행을 2번이나 했어야 했다. 즉, 열차에서 잠을 자면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열차는 4인 1실과 6인 1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우리 일행은 모두 4인 1실로 배정을 받았다. 4인 1실은 이층 침대로 되어 있어서 4인 중 2인은 반드시 이층 침대로 올라가야만 하였다. 필자의 룸메이트는 대학에서 얼마전 은퇴를 하신 분으로 장유유서에 기초하여 당연히 필자가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작은 발판만이 매달려 있어서 거의 남성 기계체조처럼 살짝 한쪽 발만을 발판에 딛고는 양쪽 팔에 힘을 줌과 동시에 훌쩍 이층 침대로 뛰어 올라가야만 하는 구조였다. 몇 번시도하다가 도저히 2층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 아래층 좁은 침대에서 서로 반대로 다리를 부여잡고 잠을 청하였다. 문제는 잠을 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혼자가기가 무서워 룸메이트 발바닥을 살살 간질이면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다른 일행 2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섬주섬 작은 테이블에 놓인 안경을 서로 찾아서 걸치고는 더듬 더듬 문을 찾아 열고 열차 중간 복도로 나섰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모든 객차의 화장실 문이 잠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여행가이드로부터 열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은 열차내 직원이 문을 잠그는데 이유는 무임승차승객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열차가 한 참 달리고 있는데도 여자직원은 엎드려 깊은 잠에 빠진 듯 했다. 필자는 용기를 내어 영어로 화장실 문을 열어달라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요청했다. 그리고 필자와 룸메이트는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는 여직원 때문에 잘 참고 있던 쉬가 질근 나오는 줄 알았다. 뜻은 모르지만 열차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귀찮게 한다는 뜻 같았다. 아이구!!! 한국의 경우라면 있을 수도 없는 상황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소비자인 우리 둘이었다.
멀뚱 멀뚱하게 두 눈을 굴리고 있는 우리를 한참 째려 보더니 화장실 문을 뚝 따주고는 일언반구 말이 없이 가버렸다. 그제야 마음의 여유를 찾은 나는 폐가 끊어지는 듯한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눈에 익은 내 안경이 바로 룸메이트 얼굴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둠속에서 서로 안경을 바꾸어 낀 것이었다. 너무 웃느라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다짜고짜 안경을 벗겨내려는 나에 대해 방어 자세를 취하는 룸메이트... 둘이는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 소리 내어 폭소를 터트렸다.
그 다음 문제는 열차운행시간이다. 2회 야간열차를 이용하였는데 기본적으로 연착은 물론이고 연착시간이 평균 40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 소비자들은 만성이 되었는지 삼삼오오 앉아서 카드놀이나, 보따리를 의자삼아 단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 순간에 우리 일행들은 야! 정말 한국 같으면 벌써 환불해달라는 소비자들이 요구가 빗발칠텐데...하며 서로 눈을 맞추었다. 그 덕분에 우리 일행은 3시간 밖에 못 자고 새벽녘 여행일정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번 실크여행에서는 2개의 사막을 지나갔다. 선선이라는 지역의 쿠무타크사막과 그 유명한 고비사막이었다. 이 중 쿠무타크 사막에 근접해 있는 투루판은 연중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지역의 오아시스 마을이며 이곳에서 생산하는 포도는 달기로 유명하다. 이는 고대에 건설되었다는 지하수로인 카레즈 덕분이며 필자도 포도농가를 방문했는데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덩굴 아래서 시식을 하고 본격적으로 건포도 판매를 시작하였다. 잔뜩 쌓아놓고 무게를 달아서 판매하는데 무조건 1킬로그램 단위로 판다. 소비자가 구매량을 조정할 수도 없다.
마지막 도시인 우루무치에서는 천산산맥에 있는 천지를 보기위해 케이블카를 이용하였다. 여섯 명이 하나의 케이블카를 이용하였는데 케이블카가 순환운행하기 때문에 정차를 하는 것이 아니라서,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케이블카의 문을 직원이 열어주면 재빨리 뛰어 올라타야 했다. 우리 일행 6명이 타고 나니..의자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할 수 없이 일행 한명은 거의 20분을 서서 흔들거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은 우루무치에서 다시 시안으로 비행기로 이동한 후 인천으로 들어왔다. 시안 국제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여 공항 내에서 유일한 커피숍으로 여행 일행들을 모시고 갔다. 그동안 즐겁고 서로 배려해 주신 일행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난감한 것이...돈을 지불하려고 신용카드를 내미니 연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죄송하게도 일행 모두로부터 남은 중국돈을 기부받아 지불을 마칠 수 있었다. 아! 국제공항인데..누가 요즈음 사회를 신용사회라고 했던가!
필자는 본 이야기를 중국의 소비사회를 비하하기 위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며, 그동안 한국의 소비사회가 얼마나 소비자복지를 위해 진행해 왔는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을 함께 하고 싶어 적었다. 그리고 실크로드 여행의 느낌도 조금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 글 / 이희숙 (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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