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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가치 지향의 소비
등록일
2010-08-18
조회수
5612
소비자칼럼(428)
타인 가치 지향의 소비
허례허식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만 번드레하게 꾸미고 실속은 없다는 뜻이다. 올바르지 못한 소비의 전형을 말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교과서에도 결혼식 등을 사례로 하여 많이 나오고,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도 많이 들어보았던 것인데 요사이에는 이 단어를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비생활이 70~80년대에 비하여 많이 개선된 것일까 허례허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다른 말들로 대체가 되었기 때문인데, 과소비, 모방 소비 등이 그러하다.
예전에는 결혼식 등의 예절을 중시여기는 일에서 본인의 능력에서 벗어난 소비를 하는 현상이 주로 벌어졌지만, 근래에는 결혼식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남의 눈을 의식한 과소비와 모방 소비 등은 흔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과소비와 모방 소비 자체만을 문제로 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현재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도 단골 소재로 등장하며, 신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러한 부적절한 소비활동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리고 있다. 지겨울 정도로 과소비와 모방 소비를 하면 나쁜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는 요즘이다.
흔해빠진 과소비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비슷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조금 더 깊숙하게 볼 수 있는 ‘타인 가치’ 지향 소비를 잠시 얘기해 보려고 한다. 비교 문화학의 여러 연구에 의하면 우리 문화는 ‘자아 가치’보다는 ‘타인 가치’를 더 중시여기며, ‘개인주의적’ 소비보다는 ‘집단주의적’ 소비를 더 추구하는 경향이 서구권에 비해 강하다고 한다. 이것은 ‘나’보다는 ‘우리’를 중시여기는 집단 생활의 가치를 중시여기는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이 현대 사회에도 이어져서, 우리는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에도 은연중에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즉 ‘내가 좋은’ 것을 사기 보다는 ‘남들이 알아주는’ 것을 사게 되는 경향이 많은 듯 하다.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지에 대해 질문해 보면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른다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설문에 대한 답변은 깊숙한 그들의 내면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과연 자신의 가치만을 반영한 구매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메는 가방, 그들의 손 안에 들려있는 핸드폰, 그들이 하는 화장 스타일 등 남에게 보여질 수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천편일률적이다. 오죽하면 국민 가방, 교복 (중고등학생들 대부분이 입는다고 해서 붙여진 의류브랜드의 별명) 등의 단어가 회자될까. 유행에는 민감하지만, 쏠림현상이 매우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광고도 이러한 점을 잘 간파하고 있다. ‘당신의 품격을 말해준다,’ ‘우리 아이도 사장님과 동격이다,’ ‘당신, 세상을 참 잘 사셨군요’ 등의 유명한 카피들과 ‘집’을 소재로 한 한 아파트 광고에서 친구에게 또는 연인에게 아파트 브랜드를 보여주고 그것을 부러워하는 상대방의 눈길 등은 ‘타인 가치’ 지향의 소비를 정확하게 꿰뚫는 것들이라 하겠다. 광고가 그러한 현상을 조장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한 현상이 있기 때문에 광고가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좀 더 설득적이지 않을까.
좀 더 개성이 있는 소비가 필요하다. ‘타겟 소비자가 젊은 세대들 일수록 광고하기가 제일 쉽다’는 어느 광고인의 말은 개성과 ‘튀는’ 제품에 대한 소비도 같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우리의 지나친 ‘타인 가치’ 지향성을 한 번 쯤 되짚어 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타인 가치’ 지향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며, 비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가치’는 무엇이고, ‘타인의 가치’는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고 지혜로운 소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