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유통업체에 다니는 친구가 있습니다. 성품이 온순하고 고와 대학 졸업하면 일등으로 시집가 현모양처로 살 줄 알았던 친군데 졸업과 동시에 그 어렵다는 곳에 입사해 15년차가 되도록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20년 가까이 저의 컴플레인사(史)를 지켜보았지요. 여기선 조금 살살, 요 부분에선 이렇게 액센트를 주라며 조언도 해주지요. 직급도 꽤 높습니다. 이번에 승진하면서 고객상담실에 배치 받았는데요. 우려했던 대로 퍽 힘들다고 합니다.
하루는 이 친구가 자기는 `감정노동자'란 말을 하더군요. 자신의 감정상태와 상관없이 늘 웃고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 종사자들을 `감정노동자'라고 하지요. 업종이 다양화되면서 이 감정노동의 범위도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언제 어디서나 웃고 있어야 하는 직업도 사명감 없이는 정말 못할 일인 거 같습니다. 저같은 인간은 환생을 해도 못가질 직업입니다.
하여간 이 친구는 별별 고객들을 다 겪는다고 합니다.
소위 '깐깐한' 고객은 오히려 다루기 쉽답니다. 잘못한 일을 따지면 사과와 함께 시정하면 되니까요. 반말에 돈 던지며 자존심 상하게 하는 건 예사구요. 실컷 입다 너덜너덜해진 옷 들고 와 막무가내로 환불해내라는 사람, 저 직원 마음에 안드니 잘라버리라며 소리지르는 사람, 화장품 바닥보일 때까지 다 써놓고 얼굴에 부작용 났다며 다 물어내라는 사람, 세상엔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있답니다.
제일 힘든 게 조울증 환자인데요. 생트집잡아 사람 붙들어놓고는 피말리는 고문을 하루종일 당하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네요. 최근엔 모 명품브랜드에서 티셔츠를 구입한 여성 고객이 그 티셔츠 때문에 겨드랑이 부분에 발진이 생겼다며 거액을 요구하는 사건이 있었답니다. 그 고객은 발진으로 인해 병원을 다녔으며, 또 병원을 다니느라 해외 출장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네요.
아무리 설명하고 사과해도 점점 액수는 올라가 '법대로 하자'고 했더니 히스테리를 부리며 드러누웠답니다. 참 듣기만 해도 답답한 노릇이지요. 친구가 한 얘기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요즘 기업에서 유행한다는 '감성경영'에 대한 얘기입니다. 유통업체에서 화난 고객을 상대할 때의 원칙인데요. 담당자가 가장 유념해야할 사항은 일단 고객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라는 건데요. 감정이 폭발한 사람은 상황 설명도 정확하게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화가 난 포인트도 잊어버리기 십상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잘난 척하며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백발백중 화를 더 돋구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우선은 그 마음을 받아줘서 감정을 수그러지게 만들어야 한답니다. 그 다음 고객이 진정 화난 부분과 해결해야 될 점을 듣고요, 그리고 나서 이성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작전'이지요.
"정말 화나셨겠어요"라든지 "저라면 그것보다 더 화냈을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동의를 한 다음 "이렇게 해드리면 어떨까요"라고 방법을 제시하는 식입니다(사실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사람 앞에선 불같이 피어오르던 화도 누그러지게 마련이지요).
고객 만족, 고객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상대가 어떤 말로 도발해도 결코 화내지 말고 웃어야 하는 직업은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정노동자'들이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산업이 뜨는 것이겠지요. 누군가는 그 스트레스의 전이대상이 되야하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