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학교주변은 비교적 한적한 동네인 경기도 역곡이라는 곳이다. 아직은 주변상가가 그리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고 방학이 되면 통행인구도 많지 않은, 80년대 서울의 변두리 같은 곳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학교 정문 옆에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커피숍이 하나 생겼다. 학교 안에는 100원짜리 커피를 파는 자판기가 있고 학생회관 안에도 조금 괜찮은 원두커피를 1,000원(아메리카노) 또는 1,500원(커피라떼) 정도에 팔고 있다. 그리고 서울에는 그 흔하디 흔하게 보이는, 별다방이나 콩다방도 없는 곳이다(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를 35세 이상의 독자를 위해 이 다방이 각각 Starbucks와 Coffee Bean을 지칭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
처음에는 소위 요즘 새로운 유행으로 싹트고 있는 소위 착한 소비나 윤리적 소비의 대명사인 공정무역 커피를 학생들이 사먹을까 싶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가격도 자판기 커피에 비해서는 20배쯤 비싸고 학교 안에서 파는 소위 들고 다니면서 먹어도 있어 뵈는 컵에 담아 파는 커피보다도 거의 두 배쯤 비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들 말로는 그 커피숍이 성황이라고 한다. 학교에 오면서 아예 사들고 오는 학생들도 많고 우리 대학원생들은 점심식사 후 일부러 나가서 그 커피를 사오기도 한다.
나는 내심 므흣해져서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착한 소비의 예로 이 커피숍의 성공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내 해석이 틀렸단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커피숍의 커피가 맛있기 때문에 먹는 것이지 그 커피가 공정무역 커피이기 때문에 먹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요즘 대학생들은 교수가 틀린 내용을 이야기하면 대개 좋은 말로 바로 고쳐준다). ‘공정무역’과 관련된 그 무엇 때문에 소비를 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거라고 하면서.
요즘 어딜 가든지 녹색성장과 녹색소비에 관한 주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학회는 물론이고(소비자학 관련학회는 물론 심리학 관련학회, 경제경영학 관련학회, 생명공학 관련학회 등 온갖 학회를 포함해) 지자체에서 하는 세미나엘 가도, 무슨 고객만족 위원회에 가도, 글로벌 경제위기 심포지엄에 가도 녹색성장과 녹색소비를 이야기한다. 누가 이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랴! 특히 소비자학 전공자 입장에서는 소비자윤리나 녹색소비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을 보호할 녹색성장을 위해 소비자들의 녹색소비를 트렌드화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녹색소비가 일단 에너지 절약과 소비절약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고려한 소비가 아니라 첫째, 개인의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고 자원대비 개인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비, 둘째, (아마도 건강에 좋을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가공하지 않고 자연상태로 소비하는 소비를 녹색소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이익 위주의 녹색소비는 단기적으로 녹색성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정적인 측면으로 사고를 확대해 보건대, 일단 시장규모가 줄어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며 가격 대비 효율을 따지느라 현실적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한 환경상품시장이 약화될 것이다. 농업부문에서도 인위적인 품질개량이나 화학비료 없이 생산된 농산물만으로 먹거리를 생산, 공급하게 보면 소비자들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녹색성장을 위해 공급자 측면에서는 에너지를 줄이고 환경친화적인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녹색기술을 통해 효율적으로 생산된 품질 좋은 제품을 싼 값에 공급할 수 있게 되면 소비자로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녹색생산은 녹색소비라는 디딤돌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녹색성장으로 녹색소비를 리드하기보다 녹색소비가 녹색성장을 리드하는 것이 더 쉽다. (모든 기업이 소비자 욕구분석에 집중하고 있는 현실을 보라!) 녹색생산과 녹색소비는 이제 똑같이 녹색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 이 둘은 녹색성장을 향해 한 발을 같이 묶고 2인 3각 경주를 해야 할 상황이다. 녹색생산과 녹색성장을 위해 녹색소비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 소비자들이 ‘녹색’의 바람직한 개념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녹색소비’의 실천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 시대에 가장 깨인 대학생 소비자들조차 커피를 마실 때 ‘공정함’보다 ‘맛’이라는 감각에 끌려 소비를 하는데 다른 소비자들을 어떻게 계도할 것인가 그들에게 어떻게 녹색의 의미를 가르치고 어떻게 녹색소비를 하게 만들 것인가 누가 알려주기만 하면 열심히 가르치련만!

■ 글 / 김경자 (가톨릭대학교 소비자학전공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