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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백반식당 아주머니...
등록일
2009-05-13
조회수
5964
소비자칼럼(364)
길 건너 백반식당 아주머니...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어릴 적 일이다. 어머니께서 바깥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한동안 학교가 파한 후 대부분의 점심은 어머니가 아시는 길 건너 백반식당에서 해결하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아이가 오면 백반을 주라고 부탁하시면서 식비를 아주머니에게 미리 내신 것이다. 학교를 파하고 배가 고파 식당에 갔을 때는 점심시간이어서 사람들이 붐비었다. 어린 꼬마가 어른들 둘 또는 넷이 앉는 식탁에 앉지 못하고 한쪽에 서있으면 ‘지금 바쁘니까 조금 있다 오라거나’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손님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식당에 다시 가면 ‘반찬이 떨어져서 이것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중요한 반찬이 빠진 백반이 놓여있었다. 어떤 때는 아주머니가 식당에 없거나 아예 문을 닫고 어디론가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린 나는 어머니에게 그 집에 돈을 주지 말라거나, 아주머니가 제때 약속한 밥을 주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난 번 학교앞 식당도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가 그 아주머니와 대판 싸우기만 하시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교 갈 때마다 그 아주머니를 마주칠까봐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어머니는 제가 오면 식사를 주라는 조건으로 식당아주머니께 식사대금을 미리 건네셨다. 이 거래의 주된 내용은 사업자가 특정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제3자에게 돈을 미리 받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거래는 여러 가지 형태로 현재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몇몇 제휴서비스, 포인트, 제3자 발행형 상품권 등의 서비스도 이러한 거래형태에 해당한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2008년 한해동안 특정인에게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대금을 제3자가 대지급하는 시장의 규모가 2조원을 초과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2007년 한해동안 거래규모가 7,700억엔에 이른다고 경제산업성은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시장의 규모가 커진 만큼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거래이고 그런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거래의 일부가 심심치 않게 뉴스거리가 되어왔다. 지난 주에도 몇몇 사업자가 당초 지급하기로 약속한 서비스를 일부 축소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아 소비자민원이 제기되고 언론에 기사화된 바 있다. 그전에는 또 다른 몇몇 사업자들이 그랬었다.
오늘은 소비자가 아닌 이런 류의 소비자민원을 경험한 사업자들에게 몇가지 조언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소비자에게만 조언하다 새삼스럽게 사업자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류의 소비자분쟁은 대부분 사업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슈화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소비자는 제 어릴적 경험처럼 식당 아주머니가 백반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왜 안주냐’고 항의한다. 더나가 불매운동 등 집단행동을 할 수도 있고, 관계부처에 호소할 수도 있다. 또 우리나라는 이런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 소비자가 항의할 때, 사업자는 머리 아프다 하지 말고 소비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주고 안주고는 내가 결정한다’고 주장하거나, 이런 주장하는 소비자의 쪽박을 깬다면 이를 지켜보는 다른 다수의 소비자가 고객에서 이탈할 수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아서 비용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선문답처럼 구체적이지 못하고 두루뭉실 해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무슨 주장인지 쉽게 와 닿는다. 소비자와 사업자가 대립의 상대가 아니라 시장 내에서 서로 윈윈하는 거래의 동반자이다. 소비자 없는 사업자도 없고 사업자 없는 소비자도 없다. 더욱이 이런 경제위기 때에는 소비자, 사업자가 쓸데 없는 일로 에너지 낭비 할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는 대안을 머리 맞대고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사업자를 찾아와 항의하는 소비자에게 실효성도 없는 위협을 가해 항의를 무마시키는 시대는 제가 중학생이 되면서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