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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trust)와 경제 [세상보기]
등록일
2009-04-08
조회수
5383
세상보기(312)
신뢰(trust)와 경제
신뢰(trust)의 행동이란 그렇게 하면 손해를 볼 확률도 있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가령, 5만원이라고 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5만원이라고 믿고 5만원에 물건을 사는 행동이 바로 신뢰의 행동이다. 교과서가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는, 파는 자와 사는 자 간에 신뢰(trust)가 없으면 팔고 사는 일이 불가능하다. 다른 말로, 신뢰가 있는 만큼 팔고 사는 것이 용이해 진다. 소비자가 기업을 신뢰하면 기업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게 되어, 이것저것 물건을 따져보지 않고 쉽게 물건을 살 수 있다. 기업도 소비자가 자신의 말을 믿으므로 사라고 설득하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이 소비자를 신뢰하면, 마음 놓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쉽게 구매를 권유할 수 있고, 그래서 제품의 개발생산이나 판매 비용이 줄어든다. 따라서 이론이 아닌 현실의 시장에서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소비자들이 좀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격에 뭘 바라느냐고 생각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100그램에 900원 정도되는 삼겹살을 사면서 제대로 된 삼겹살이라고 생각하면 너무한 것이고, 4,000원짜리 백반을 먹으면서 제대로 된 고추 가루와 국산 배추로 담근 김치를 바라는 것도 너무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속았느니, 사기를 당했느니 하면서 난리를 치는 소비자들이 많이 있다. 신뢰할 수 없는 판매자에게 신뢰할 수 없는 물건을 샀으면서도 나중에 속았다고 말하는 것은 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반면에, 아무리 판촉이고 특판이라 할지라도 납득할 수 없는 가격에 물건을 파는 판매자도 정상적으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은 자선단체가 아니라고 하면서 왜 그렇게 좋은 물건을 헐 값에 주는지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소비자나 판매자 모두 신뢰하기 어려운 자로 보여질 뿐이다.
성악설을 따른다면, 사람들은 신뢰를 이용해 이익을 만드는 존재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큰 기업이라고 믿고 열심히 사서 마일리지를 쌓았더니 비행기 표도 제대로 주지 않는 자나, 음식점에 개를 데려오거나 사지도 않을 먹을 거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는 소비자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호의를 베푼 상대에게 이기적 행동으로 되갚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경우 그 상대방은 나름대로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래서 심한 경우 소비자는 그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모든 국내 항공사가 그러면 외국항공사를 이용할 것이며, 만약 세상의 모든 항공사가 다 그러면 늘 손해 본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라도 항공사에 득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는 소비자를 겪은 판매자는 결국 가격을 교묘히 올려 받거나 주어야 할 서비스를 줄여 소비자와의 게임에 들어갈 것이다.
결국, 신뢰가 없으면 정상적인 상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시장은 곧 정글이 된다. 그때그때 속이고 살아남는 자만이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글의 특징은 모두에게 골고루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 데 있고, 그래서 평균적인 행복지수가 정상적인 시장보다 낮아지게 된다. 아무리 물건을 많이 만들어도 신뢰가 없으면 물건을 제대로 팔고 살 수 없고, 행복도 골고루 누리기 어려워서, 경제에는 일종의 동맥경화 증세가 나타난다. 그리고 동맥경화 증세가 발생하면 그 증세는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신뢰가 없는 경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많이 부수고 많이 만들어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것보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