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소비가 없으면 시장경제는 지탱될 수 없다. 주택산업은 전형적으로 정부와 기업이 한데 어우러져 시장경제가 무너져 가는 경우이다. 그렇다고 시장경제가 무너져가는 만큼 일시적으로나마 공공성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통신서비스 산업도 필자 보기에는 주택산업과 별 반 다르지 않다. 모두들 시장경제를 외치지만 실상 산업 참여자간 이익배분에 공정성이 있는지 애매하고, 그 와중에 특정 이해당사자만 행복한 그런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기업과 정부에만 돌리 수도 없는 형편이다. 과연 소비자는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소비자에게도 책임과 권한이 있다. 이 양자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소비자 역시 시장경제의 움직임에 역행 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먼저 소비자의 책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소비의 합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합리성이 너무 추상적인 말이니,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비자의 책임은 절제와 절약에 있다고 이해된다. 즉, 꼭 필요한 것만 쓰고, 필요 없는 소비는 하지 않는 것이 소비자의 책임이다. 가령, 그렇게 많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그렇게 근거도 없는 가격을 주면서 꼭 거기에 살아야 하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책임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과 교양을 쌓고, 자기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일은 왜 하는지, 또 왜 그런 행동양식을 가져야 하는지 등에 대해 자각을 하면, 불필요한 소비는 안 하리라 생각된다. 냇가에 버려진 수많은 부탄가스 통과 고기 조각들, 그리고 공항에 쌓여있는 수많은 골프채들이 좀 줄어들 때 그나마 소비자들은 시장경제의 움직임에 기여하는 것이다. 절제와 절약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자원은 꼭 필요한 곳에 집중 사용되고, 꼭 필요한 시기를 위해 비축될 수 있다. 그리하여 시장경제는 건강하게 지탱될 수 있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이긴 하지만 무작정적인 소비는 시장경제에 해가 될 뿐이다.
그러면, 소비자의 권한은 무엇인가? 불공정하게 자신에게 해를 주는 경제주체를 설득도 하고 징벌도 주는 권한이다. 설득과 징벌을 위해서도 소비자는 지식과 교양을 쌓고 자기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소액이어서 눈을 감고 경찰서에 가는 것이 싫어서 넘어가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지식과 교양을 쌓아서, 피곤에 지친 백화점 상담원을 위로하고 도와줄 수 있는 능력과 태도도 갖추어야 한다. Black consumer를 경계하는 문화를 창달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마케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시장경제의 출발이 소비자에게 있다고 본다. 물론 개개 소비자가 워낙 미미해서 기업도 정부도 그것을 쉽게 간과하지만, 어째든지 소비자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장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소비자주권이라는 거창한 말 대신 책임과 권한이라는 말을 가슴에 안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소비자가 올해에는 더 늘어 났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