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청첩장이 몇 장 날아들었다. 봄이나 가을에 집중되던 결혼식이 요즘은 계절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새로운 세태인 듯싶다. 가뜩이나 연말과 명절을 보내느라 살림살이가 빠듯한데 축의금도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축의금 액수도 자꾸 올라가다보니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일반적인 기준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확인할 때가 많다. 도대체 얼마를 내야 체면치레나 할 수 있는 건지 판단이 쉽지 않다. 특히 고급호텔에서 식사하면서 진행하는 결혼식의 경우는 내가 밥값이나 제대로 내고 먹는 건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돈도 돈이지만 청첩장 중 상당수는 겨우 안면이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보낸 것이라서 가야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판단하기 난감한 경우가 많다. 이럴 때마다 우리의 혼례문화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혼례문화가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총생산 대비 한국의 혼례비용은 일본이나 영국, 대만의 3배가 넘는다고 한다. 최근 우리사회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독 혼례비용만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허례 허식적인 예단과 예물, 비싸고 고급스런 것만을 고집하는 살림장만, 무분별한 하객초청, 수많은 인파로 난장판이 된 결혼식장, 호화롭고 사치스런 예식,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를 양산하는 피로연, 공과금처럼 변질된 축의금 등이 바로 우리 혼례문화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혼례비용이 많이 들다보니 축의금을 늘리기 위해서 조금만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무턱대고 청첩장을 보낸다. 오죽하면 누가 자녀 결혼식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될까. 청첩장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으면서도 체면 또는 인간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족 행사가 되어야 할 결혼식은 평균 하객수가 300명이 넘는 사회적 행사가 되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외국의 결혼식이 대부분 가까운 친지가 모여 가족 행사로 치루는 것과는 사뭇 대조가 된다.
이러다 보니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결혼 당사자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참석자의 대부분은 정작 결혼식에는 참석하지도 않고 축의금만 내거나 식사만 하고 돌아가 버려 정작 결혼식은 썰렁한 경우가 많다.
혼례 절차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엄숙해야 할 본연의 혼례절차는 찾아보기 어렵고 마치 전시적이고 상업적이며, 가문의 과시행사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전통과 현대의 결혼절차가 이상하게 결합되어 국적불명의 결혼절차가 당연시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결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업자들의 상혼이 부추긴 면도 있다. 예식장을 빌리려면 그곳에 딸린 식당을 이용해야 하고, 결혼예복이나 신부화장, 사진촬영도 일괄적으로 해야만 하는 소위 ‘끼워팔기’가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이제 일그러진 우리의 혼례문화를 바로잡아 결혼의 본래적인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우선 결혼식이 가족행사가 될 수 있도록 초청 범위를 가까운 친지로 한정하여 하객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또한 ‘호화, 사치혼례'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필수적이다. 사회지도층의 결혼행태는 상향욕구가 강한 일반 국민에게 곧 바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일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행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낭비로 얼룩진 결혼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결혼은 인생의 또 다른 출발점이고, 잘못된 출발은 잘못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 글 / 문성기
한국소비자원 대외홍보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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