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로 인해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시장까지 급격히 침체되는 좋지 못한 경제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민간연구소들은 물론 국책연구소까지 2009년 GDP성장율을 2% 안팎으로 낮게 예측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비상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경제정책수립을 위해 워룸(war room)에 해당하는 비상경제상황실까지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도산할지, 또 일자리가 얼마나 없어질지 모른다는 예측이 신문, TV, 토론회 등에서 매일같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경제상황이 예전과 같이 않고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유동성을 증가시키고 이자를 낮추었지만, 경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돈이 없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은 증가하고,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백화점과 할인점의 매출은 감소하고 있다. 경제 내 그리 좋은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불과 10 여년 전 외환위기 때를 생각해보면, 이 위기와 시련을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스스로가 독립적인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을 운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빚도 없을 뿐 아니라, 금리, 유동성, 재정지출, 조세 등 모든 경제정책을 우리 독자적으로 수립하고 즉각 시행할 수 있다.
실제로 10 여년 전에는 수많은 기업, 은행이 도산하고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내 몰렸다. 설상가상 부동산가격마저 추락하여 빚은 빚대로 남고 살던 집마저 잃어버린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부는 IMF의 동의없이 이런 국민을 돕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였다.
되돌아 보면, 당시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나라 경제는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국제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많은 수가 도산하고 흡수합병되었던 은행이야 말로 문턱이 낮아지고 외국은행과도 경쟁이 가능해 졌다. 정부의 지배하에 놓여, 시장 내 자금중개기능을 제대로 못하던 은행이 대출세일을 하고 새로운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은행이 변하게 된 계기가 10년 전 외환위기였다.
현재 우리가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IT산업도 이때 다른 산업을 포기하고 선택한 산업분야이다. 여러 대기업이 문어발처럼 여러산업에 중복투자하여 어느 기업도 어느 상품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우리는 과감히 경쟁력있는 하나를 위해 다른 여럿을 포기했다. 그 결과 우리는 IT분야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뿐이 아니다. 정부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합병으로 공공부문의 효율성이 크게 제고되었다. 정부가 경영원칙없이 운영하던 철도, 전기, 가스 등 대부분의 공공사업이 민간으로 완전히 이양되어 사업의 효율성은 물론 이용자만족도가 제고되었다. 철도사업의 만성적인 적자도 해소되었다. 이처럼 복지부동으로 대표되던 공공부문이 스스로 움직이게 된 계기가 외환위기였다.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 보면, 위기가 기회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가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도태되지만 살아남으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번 더 엎그레이드 해야 한다.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경쟁력이 없는 분야는 포기하고 경쟁력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것이 자유시장질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선택과 집중이기 때문이다.
■ 글 / 정윤선 (cys@kca.go.kr)
정책연구본부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