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일 통계청 및 OECD 등에 따르면 금년 9월 기준 우리나라의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비 4.1%로 OECD 평균 2.4%의 1.7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제동향 보고서’를 통해 ‘우리 경제는 높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소비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고용 증가세마저 둔화되고 있다’고 우리경제의 어려운 상황을 진단한 바 있다.
실제로 2005년 이후 2% 대의 안정세를 보였던 국내 물가가 2007년 말부터 급등하여 2008년 7월에는 5.9%로 9년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상승은 소비자의 구매력을 감소시켜 긍극적으로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현재의 경제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국내 요인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 2008년 들어 원유, 곡물, 금속 등 국제원자재가격이 국내 물가상승, 소비위축, 고용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 국제원자재 가격상승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직접적이고 연쇄적이다.
경기악화의 원인이 내부가 아닌 외부환경변화에 기인하는 만큼 정부가 마련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물가의 상승원인들이 정부가 제어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범부처 차원의 물가안정 대책을 지속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유류세 인하, 석유제품 유통시장 개선, 원자재 할당관세 인하, 곡물공급확대, 공공요금 동결, 수입가격 공개, 주요 화장품 병행수입 허용 등 현재까지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인 물가안정정책만 수십개에 이른다. 이러한 정책은 실제로 사업자간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물가안정은 물론 경제의 효율성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5월과 6월에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국내외 가격차조사에 따르면, 주요 생필품의 가격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높은 원인으로 비합리적인 유통구조, 독과점 시장구조, 사업자의 불공정행위, 소비자정보 부족 등이 지적되었다. 최근 정부는 시장 내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정보제공을 통한 소비자의 합리적선택을 유도하여 생산과 소비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시행하고 있다. 이들 정책이 단기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거래비용절감으로 인한 총공급확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물가안정, 소비와 고용의 증대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정부의 수배에 달하는 소비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소비자의 영역은 상품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물가안정과 넓게는 경제회복을 위한 소비자의 역할을 다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먼저, 합리적인 소비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해외 유명화장품의 판매가격은 수입원가의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10배에 달했다. 수입명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선택이 과다한 유통마진과 비합리적인 유통구조를 고착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의 합리적인 소비도 비싼 에너지의 수입을 줄여 가계와 국가의 부담을 줄이는 좋은 대안이 된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이 경제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예들이다.
둘째, 금융시장에서 포트폴리오 관리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660조원에 이르며, 특히 소득증가세를 상회하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계의 부실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소득수준을 넘어서는 부채를 조달할 경우, 해당 가계뿐 아니라 돈을 빌려준 은행, 또 그 은행에 채권을 보유한 다른 소비자까지 함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계의 포트폴리오 관리가 필요한 때이다.
셋째, 노동시장에서의 역할이다. 임금은 제품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은 소비자에게 물가상승이라는 부담으로 다시 돌아온다. 노동시장에 적극 참여하여 소득을 창출하고 소비하여 경제선순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외부상황이 좋지 않은 때 내부갈등이 발생함변 그 손해는 증폭되고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된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환율의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어 수입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고 있고 기대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상승 압력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의 경제상황이 단순히 인플레이션에만 머무르지 않고, 물가는 상승하면서 생산은 감소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곳곳에서 대두되고 있다. 정부의 경제안정 노력 못지 않게 소비자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글 / 정윤선 (cys@kca.go.kr)
정책연구본부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