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용카드 서너장 쯤 안가지고 계신 분들 없을 겁니다.
저도 지갑을 열면 한 칸에 두개씩 꽂혀있을 정도니까요.
지인들의 부탁으로 하나둘 만들었던 신용카드로 지갑이 터질 지경입니다. 따져보니 쓰지도 않는 카드로 연회비 빠지는 것도 아깝고 지갑이 복잡하기도 해서 하루 날을 잡아 카드 정리에 나섰습니다.
마일리지 적립이 되는 것과 교통카드만 남겨두고 다 해지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나 신용카드 해지는 생각보다 만만한 '작업'이 아니더군요.
1566이나 1544로 시작되는 신용카드사 전화는 걸어서 일단 상담원과 연결되기까지 어림잡아 1분30초가 넘게 걸리더군요. 겨우겨우 상담원과 통화가 되더라도 "카드를 해지하고 싶다"는 제 말에 호들갑스럽게 "잠깐만 기다리시라"며 윗선을 연결시킵니다. "뭐가 불만이냐"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연회비를 없애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나오더군요.
정말 대한민국에서 손해 보지 않고 살려면 좀 심하게 표현해 '죽는 소리'를 하거나 '협박'을 해야 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이날 전화돌리기에서 건진 수확은 카드 두개사로부터 연회비를 면제받았고, 더 좋은 조건의 카드로 교환한 거지요.
습자지귀인 터라 카드사의 각종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통에 본래 목적이었던 카드 해지는 한 곳 밖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단호하게 해지를 한 H카드사의 '말바꾸기'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4월 신용카드로는 엄청난 부가서비스에 혹해 냉큼 가입했던 곳이었습니다.
버스 및 지하철 100원 할인에 대형할인마트 5~7% 할인, 주유 및 영화관란 할인 등이 절 유혹했죠. 3개월간 카드 이용금액이 30만원이 넘으면 이런 혜택을 준다는 거였는데요, 이번에 통화를 하면서 하나하나 따져보니 이 혜택은 내년 2월부터 월 30만원 이상 이용금액인 사람으로 강화된다는 거죠.
알아보니 지나친 부가서비스가 과당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금융감독원의 우려 속에 이 카드는 신규발급이 두 달 만에 중단됐답니다. H은행 측은 당시 카드 발급을 중단하면서 기존 회원에 대한 혜택은 카드 유효기간까지 유지하겠다고 공언해놓고, 약속을 금세 깨뜨려버린 거죠.
아무리 그래도 일방적으로 자격요건 강화를 통보하는 건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한꺼번에 이용금액을 3배 이상 올린단 말인가요?
H은행 측은 실적 검증 기준 강화차원에서 자격기준을 강화한 거지 부가서비스를 축소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은행은 얼마 전 한 인터넷서점에서 결제할 때 2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를 만들었다가 3주 만에 발급을 중단해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출판사와 온-오프라인 서점 협의체인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운영위원회에서 이 카드의 할인 내용이 법률에 위배된다며 고발한 데 따른 거였죠. 무리한 부가서비스 혜택을 약속했다가 이래저래 망신만 당한 케이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해지한 H카드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소비자의 동의 없는 카드사의 일방적인 부가서비스 적용기준 변경행위는 계약위반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전 S카드는 일방적인 항공마일리지 축소를 했다가 소비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했죠.
1, 2심 모두 졌습니다. 당시 이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는 "이런 부가서비스 혜택의 자격요건 강화는 개별 부가서비스 축소보다 더 비신사적이고 소비자들의 피해도 더 클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지갑 속에서 잠자고 있는 신용카드 점검, 다시 한번 해보세요. 모르는 사이 약관이 변경됐거나, 연회비가 술술 빠져나가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 글 / 김소라 기자
스포츠조선 사회경제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