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픈 데...
요즘 불합리한 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단순일반의약품인 소화제나 두통약, 비타민 영양제, 구강청결제 등 일반적으로 의사의 처방전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약품들은 꼭 약국에 가서만 구입해야 한다.
이와 같은 약품들은 의사의 처방은 당연히 요구되지 않고 또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어 전문지식이 필요 없는 대중적인 의약품이다. 소비자는 생활하면서 소화불량이나 두통으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꼭 약국에서만 필요한 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소화불량이나 두통은 시간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쉽게 경험할 수 있다. 공휴일이나 늦은 시간에도 필요 할 때가 더 많다.
약국은 멀거나 일찍 문 닫는 경우 많아
의약분업이 실시되고 나서는 동네 약국은 병원주위로 옮겨 주택가에서는 약국을 구경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병원주위의 약국들도 병원이 문을 닫는 시간에 맞추어 일찍 문을 닫는 약국이 늘고 있다. 소비자는 밤 9시에 어렵게 찾아간 약국에 닫힌 문을 보고 밤새 고통을 인내하든지 아니면 병원응급실에 가야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고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비상약을 반드시 미리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나
OECD 국가나 의료보험을 시행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이와 같이 간단한 의약품을 약국 외에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 또는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안전을 위해 약품의 관리가 엄격한 미국에서도 대형마트에 가면 비타민은 물론, 소화제, 감기약, 안약 등등 수시로 필요한 대부분의 약을 의사의 처방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게는 24시간 개방되어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80%에 가까운 응답자는 이와 같은 의약품의 슈퍼판매에 찬성하고 있다(시민의 모임, 2005년 조사). 또 의약품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의사의 84.5%가 슈퍼판매를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2006.3.6). 정부에서는 여러 차례 슈퍼판매를 시도하고 있으나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처럼 소비자도 의약품의 전문가인 의사도 슈퍼판매를 찬성하고 있는데, 왜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일까
규제개혁은 가까운 것부터
소화제나 두통약을 약국에서도 슈퍼에서도 편의점에서도 판다면 소비자는 응급실을 찾는 수고나 고통을 인내하는 어려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또 판매처가 많아지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경쟁도 이루어져 나중에는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도 높다. 정부는 규제개혁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규제개혁을 통해 시장경제를 활성화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고 한다. 그것도 좋지만, 우선은 소비자가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 애로가 있는 것부터 고쳐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고 국민인 소비자만족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 글 / 백병성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본부 거래조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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