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비가 국민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수요자 중심의 시장경제체제가 정착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는 경제‧사회 전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소비자의 힘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소비자의 권리의식과 주장이 높아지면서 성숙한 소비자의 힘이 국가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소비자정책 추진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 패러다임 전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공급자 중심시대의 소비자보호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소비자보호정책은 공급자 중심사회에서의 시대적 산물이다. 정보의 비대칭 등으로 소비자와 사업자간 대등한 거래관계 유지가 곤란한 사회에서는 국가가 공권력을 통해 부당한 거래에 의한 소비자피해를 구제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당시의 소비자정책은 소비생활의 질을 높여 소비자후생을 증대시키는 것 보다는 사업자들의 부당한 거래로부터 소비자피해를 사후적으로 구제해 주고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긴요했다.
하지만 세계화‧정보화로 시장이 완전개방 되고, 소비자가 명실상부한 시장경제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게 된 상황에서도 소비자를 경제적 약자인 보호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다소간 문제가 있다. 이제 대다수 소비자들의 거래상의 소비자 피해나 불만을 구제해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변화된 시장 환경에 맞춰 소비생활의 질 향상을 통한 소비자후생 증대에 보다 주력할 때 인 것이다. 이에 정부는 소비자 스스로 시장주체로서의 자립적인 역량을 갖추도록 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소비자 스스로 시장 환경에 적응하고 소비자정책에 주체적이며 역동적으로 참여토록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현행의 소비자정책은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경쟁, 산업, 금융, 복지, 환경, 교육, 문화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경제정책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소비자와 사업자간 거래관계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소비자피해를 구제하려는 소비자보호 정책적 의미만을 강조하고 있다. 소비자정책은 소비자보호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관련 정책들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정책이며, 이 때 정책의 중심은 소비자후생 증대를 위한 정책 간 조정과 시너지효과 창출에 있음에도 이를 소비자보호정책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
|

|
|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소비자정책 개념은 시대정신에 맞게 재정립되어야 한다. 즉, 소비자와 사업자간 거래관계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는데 주력하는 소비자보호정책이 아닌 포괄적인 종합정책으로서의 소비자정책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제, 소비자는 경제적 약자이고 보호의 대상에 머무를 수 없으며, 국가경제를 이끌어 가는 정책수행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정보력과 경쟁력을 갖춘 소비자의 합리적인 시장 선택이 시장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소비자 니즈에 근거한 시장의 근본적인 소비자문제 해결이야 말로 경제발전의 요체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처럼 소비자와 사업자간 거래에서 소비자가 입는 불만 또는 피해에 대한 사후적 피해구제와 사전적 피해예방만으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근본적인 소비생활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한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변화된 패러다임하의 소비자정책은 소비자와 사업자간 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인식하고, 시장친화적인 positive-sum 관계로 파악하여 소비자경쟁력과 기업경쟁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능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을 조화롭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정책과 ‘시장의 문제 해결 또는 소비자후생 증대’를 위한 정책이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역량 있는 소비자와 성공하는 사업자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야 말로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는 첩경인 것이다.
이는 시장내에서의 소비자와 사업자간 관계 설정의 변화를 의미한다. 대립관계를 통해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관점에서 상생관계를 통해 파이를 어떻게 생성할 것인가의 관점으로 관계설정이 변화되는 것이다. 즉, 소비자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기업경쟁력을 훼손하여 소비자이익을 제고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경쟁력 제고가 기업경쟁력의 원동력이 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소비자정책은 소비자보호정책과는 차별화되는 정책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정책의 대상을 소비자에서 생활자로 확대하고, 소비자문제의 개념을 소비생활문제로 전환하여, ‘소비생활문제 해결을 통한 소비자후생 증대’에 초점을 맞춘 생활정책 관점을 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중심적이고 시장친화적인 소비자정책의 개발과 추진이야 말로 소비자경쟁력과 기업경쟁력을 상호 보완하는 선진 대한민국 경제의 견인차인 것이다.
■ 글/황정선 연구위원(cshwang@cpb.or.kr)
한국소비자보호원 정책연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