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필자는 일터에서 가까운 모 자동차회사 건물에서 들려오는 소음공해(!)로 여러 날 동안 일손을 놓아야 했다. 자동차의 결함에 항의하고 해당 제품의 성의 있는 리콜을 촉구하는 운전자들의 항의 집회 때문이었다. 비록 업무에 지장은 많았지만, ‘제대로 된 리콜’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커진 목소리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어서 업무에 참고가 되기도 하였다.
최근 들어 소비제품을 리콜한다는 뉴스와 광고를 종종 듣게 된다. 자신들이 만들어 판매한 제품상의 하자를 무상으로 고쳐주거나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는 것이다. 리콜의 법적인 개념은, 제품 이용자에게 위해(危害)를 끼치거나, 끼칠 우려가 있는 결함(하자)이 발견된 경우에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그 결함내용을 알리고 환불이나 교환, 또는 적절한 수리를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사업자가 스스로 리콜을 결정하면 ‘자발적 리콜’이 되고, 정부의 요청에 의한 수동적인 경우는 ‘강제리콜’이 된다. 강제리콜은 또 ‘리콜
권고’와 ‘(긴급)리콜 명령’으로 구분된다. 요즘은 대부분 사업자 스스로 리콜을 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가급적 강제리콜 대신 사업자의 자발적 리콜을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몇 년 전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 잠시 거주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Davis라는 사람이 주 재정 문제에 관련된 사안으로 결국 물러나는 일이 있었다. 리콜(recall)이라는 말은 원래 이 경우와 같이 선거직 공무원을 임기 중에 투표를 통해서 해임시키는 ‘국민
소환제’를 의미한다. 이것이 소비제품에 관련해서도 쓰이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있는 제품들을 소환(리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미국, 유럽 등 선진 외국의 경우 리콜 문제는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과 더불어 사업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이고,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미국의 한 예를 들면, 어떤 지역에서 잡힌 생선 몇 마리에서 위생상 문제가 발생되면, 해당지역에서 잡힌 모든 생선을 리콜할 정도이다. 실제로, 1997년에 미국의 Hudson이라는 한 식품회사에서 납품하는 일부 햄버거에서 병원성 대장균이 발견되자 위생당국에서 리콜 권고를 하였고, 해당 회사에서는 자그마치 30만 파운드의 햄버거 전량을 수거하여 폐기하는 리콜조치를 단행하였다. 이와 같이 미국의 기업들은 실제로 문제가 발생되기 전에라도 문제발생 소지가 있으면 자발적으로 미리 리콜하는데 익숙하며, 소비자들도 이러한 자발적 리콜 기업들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높다.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리콜 제도가 처음 도입된 9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는 사실 자발적이든 강제이든 리콜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말 이후로 리콜 건수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서두에서 소개했듯이 자동차에 관련된 리콜이 가장 많은데, 대표적인 경우가 자동차 안전벨트의 기능 결함과 변속기 결함이었다. 요즘에도 국내외 유명 자동차 모델들이나 가전제품 등 소비제품의 결함 있는 부품들을 리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광고를 통해서 홍보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제품을 리콜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유리할까 고민거리일 것이다. 사실 사고를 일으킨 제품 한 두개를 수거하여, 무상수리나 환불해주는 데는 큰 부담이 없지만, 이미 팔려
나간 동일 모델의 모든 제품을 리콜하게 되면, 기업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의 존립이 휘청거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잘 한번 생각해 보면, 리콜을 제때하는 기업과 리콜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문제가 드러나는 기업 중 어느 쪽을 던 신뢰하게 될 것인가? 물론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좋지만, 진실(fact)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밝혀지게 마련이다. 최근에 일본의 미쓰비시라는 회사가 자사의 자동차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이를 숨겨오다가 발각되어 큰 타격을 입은 뉴스가 있었다. 그 회사가 오죽하면 숨겨 왔을까? 막대한 리콜
비용과 이미지 훼손으로 인한 손실이 우려되어 고심 끝에 리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하였을 것이다.
자발적 리콜이 단기적으로는 기업에게 회수비용이나 보상비용, 그리고 이미지 훼손과 같은 비용요소로 작용하겠지만, 미쓰비시 자동차회사처럼, 제때 리콜하지 않음으로써 한 순간에 큰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기에 리콜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효율적(efficient)인 조치가 될 것이다. 덧붙여, 결함 제품을 리콜하는 기업은 소비자의 안전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높일 수 있게 되어 소비자의 신뢰(사랑)를 얻을 수 있어 시장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리콜의 경제학’이 성립하기 위해 필수적인 필요충분조건 중의 하나는 소비자들의 리콜에 대한 인식변화이다. 즉, 어떤 기업이 일부 불량제품을 생산했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회수하고 보상하겠다는 것은, 일단 소비자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조치로 간주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도 않았으며 정부의 리콜 권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리콜하거나, 경미한 안전사항인데도 리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신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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