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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이상 모이면 자연스럽게 벌어지던 고스톱이 한풀 꺾이는 듯하다.
사이버 세상으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상에도 고스톱은 살아 있다. 일명 둘이 치는 ‘맞고’가 유행이다.
고스톱과 관계된 고사성어가 갑자기 생각 난다. 죽치고 마주 앉아 고스톱
치던 친구를 뜻하는 죽마고우가 인터넷 시대에 ‘맞고’로 변신한 것이다.
이 단락에서는 웃자고 지어낸 말이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대문짝만하게
인터넷 ‘맞고’를 광고하는 업체도 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맞고가 오락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맞고’는 둘이서만 즐기는 온라인
고스톱이고, ‘고스톱’은 세 명이 함께 즐기는 새로운 개념의 고스톱이다.
남자와 여자 단 둘이 치는 ‘러브맞고’도 나와 있고, 남의 패를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드는 ‘전투고스톱’도 인기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는 스승이 보이고, 남의 산의 거친 돌도 내가
가진 옥을 가는데 도움이 된다. 레저로 판단하든, 도박으로 규정 짓던
고스톱에도 분명히 교훈은 숨어 있다.
고스톱의
낙장 불입과 소비 생활중의 청약 철회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시간이
되면 소비자 칼럼 171번 ‘낙장 불입과 청약 철회’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번에는 고스톱과 소비 생활 2탄으로 선택의 문제와 기술을 다룬 ‘비풍초똥팔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신입
사원은 ‘차가 막혀서’, 상사는 ‘기가 막혀서’
인생은
선택이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서부터 선택의 갈등에 휩싸인다.
일어날 것인지, 말 것인지 그것이 문제다. 선택은 자유지만 결과는 냉정하다.
당장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발딱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행동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짱’ 중의 하나인 배짱으로 밀고 나가는 소신파는 이불 속에
더 누워 있다가 지각해 상사에게 웃음을 보이며 ‘저, 차가 막혀서…’하는
광고 멘트를 날린다. 그때쯤 상사도 광고 문구를 하나 떠올린다.
평소의
행동으로 거짓말이 통하리라 믿지만 사실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때는
‘너만 모른다’는 광고가 딱이다. 연봉 높은 사람은 그냥 앉아서 인터넷으로
‘맞고’ 쳐서 따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선택이지만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비 생활도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택시로 출근할 것이지, 지하철로 출근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소비 생활의 선택은 비용이 따르는 것이 문제이다.
우아하게
모범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교통이 막히면 비행기 요금과 맞먹는
재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대구발 서울행 항공기를 이용하고 공항에서
모범 택시 타고 집까지 갔더니 항공료나 택시 요금이나 같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더라도 갈등에 휩싸인다. 몸에 좋은 유산균 음료를
마실 것인가, 다이어트 음료를 마실 것인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유산균
음료도 떠먹는 요구르트를 고를 것인지, 캡슐에 든 유산균을 선택할
것인지, 굵게 길게 사는 장을 지지하는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헷갈린다.
잘
버리는 것이 곧 버는 것
고스톱에서
‘비풍초똥팔삼’은 버리는 패를 선택할 때의 우선 순위를 알려주는
경험칙이다. 잘 버리는 것이 버는 것이다. 내가 패를 잘 버림으로써
상대방에게 점수를 주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 덜 주게 되는 것이다.
고스톱
판에 일단 참여하면 수시로 패를 내야 한다. 소비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날마다 선택해야 한다. 고스톱 판은 패를 내는 순서가 기계적으로 돌아오므로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다. 우물거리다가는 실버 고스톱으로 놀림을 받는다.
소비
생활은 날마다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장시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도 많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택시를 타든지
지하철을 타든지 반드시 선택이 필요하다. 옷이 한 벌 필요할 경우
오늘 구입하든, 내일 구입하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패를
반드시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소비 생활과 고스톱의 다른 점이다. 버리는
것이 때로는 버는 것이라는 사실은 고스톱 판에서 배울 수 있는 인생의
귀중한 교훈이다. 주관적인 선택의 기준을 마련하고 사는 것, 행복한
소비 생활의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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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승건(osk@cpb.or.kr) 한국소비자보호원 소비자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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