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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난 11월 26일이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것을 아는지….
현대인의 생활 습관과 소비 행태에 대해 하루만이라도 반성해 보자는
뜻의 캠페인이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이다.
이 캠페인은 1992년 캐나다의 테드 데비브라는 광고인에 의해 처음
시작됐으며, 해마다 11월 마지막 주에 열린다. 그는 자신이 만든 광고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비하게 만든다는 데 문제 의식을
갖고 이 캠페인을 시작해 과소비의 유혹에 맞서는 행동의 장을 마련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9년부터 녹색연합이 주축이 돼 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의 넘치는 소비가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지, 현세대에 모든
자원을 다 써버리고 다음 세대들이 사용할 권리를 뺏는 것은 아닌지
소비와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날이다.
소비에 빠진 현대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아무것도
사지 않으므로 가능하지 않을까. 겨울 입구에서 읽기에는 다소 썰렁한,
필자가 겪은 쇼핑 실패담을 첨부해 쇼핑의 폐해와 피해를 한번 반추해
본다. 실패도 귀중한 재산이므로 꿰면 보배가 된다.
피서지에서 생긴 일
피서지라고 하면 모래가 하얗게 펼쳐진 해변이나 맑은 물이 흐르고
나무가 울창한 계곡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 곳으로 희망에
부풀어 피서를 떠난다. 피서를 다녀온 뒤 대차대조표를 작성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다시는 피서를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여행의 기대도 순간이다. 열 받는 교통 체증, 바가지 중에서도 왕바가지
요금, 평상시보다 훨씬 떨어지는 서비스, 열악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짐승의 탈을 쓴 사람들과의 조우 등등. 즐거웠던 기억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아가씨나 팬티 차림의 근육질 총각은
예외지만 말이다.
전문가 씨의 피서지는 색다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 체증
걱정 없고, 비싼 에어컨 바람 찐하게 나오는 곳이다. 서비스도 우리
나라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곳, 다름 아닌 시내 유명 백화점이다.
유명 백화점처럼 피서하기 좋은 곳도 별로 없다. 은행도 괜찮은 곳이지만
눈치 보이지, 일찍 문 닫지, 백화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백화점의 장점을 몇 가지 살펴보자. 늘씬한 아가씨와 핸섬한 총각들이
서비스 잘하지, 에어컨 바람 쌩쌩 불지, 화장실도 호텔 뺨치지, 식품
매장에는 시식 코너 즐비하지 이만하면 에이급 피서지다.
전씨는 선글라스를 머리에 걸치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늘씬한 아가씨들이
늘어선 피서지를 반바지 차림으로 거닌다.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싫지는 않다. 작렬하는 태양만 있으면 금상첨화다.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쇼윈도에 걸린 옷은 눈요기로 끝내지만 가전제품은
조작해 본다. 사용법이 궁금하면 직원에게 물어서라도 익힌다. 조작법을
알아두는 것도 돈버는 길이다. 신제품 사서 조작법 몰라 애프터서비스
신청하면 비용이 청구되므로 망신 안 당하고 돈 절약하려면 필사적으로
알아둬야 한다.
출출하면 식품 매장에 내려가 권하는 대로 이것저것 맛본다. 그러면서
맛있는 것은 맛있다고 표현하면 한 점 더 준다. 몇 종류만 시식해도
속이 든든하다.
커피 코너를 지나가다 친절한 아가씨의 권유에 못 이겨 원두 커피를
한 잔 받아 마신다. 순간 전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잘 생긴 병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의 가격표. 자주 가는 할인 매장보다 훨씬 저렴하다.
피서 와서 돈 벌어 가는, 흔치 않은 횡재에 과감하게 백화점 카드를
꺼내 긁는다. 그것도 두 병씩이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몇 시간은
무지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와 콧노래를 부르면서 커피 병을 정리하던 전씨는 잠시
경악, 상당 기간 분노에 떨었다. 병 모양도 같고, 상표 디자인도 같다.
다른 것은 깨알 같은 중량 표시. 지금 먹고 있는 제품보다 10% 이상
중량이 줄었다. 한 마디로 속았다.
그때 이후로 되도록 그 회사 제품은 사지 않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런 식으로 소비자를 속이는 기업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그 해 여름, 전씨는 피서지에서 그렇게 당했다.
■글/오승건<한국소비자보호원
소비자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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