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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개막식 전, 정확히 5월 26일 한국 대 프랑스 평가전이 있었던 날이다. 아침부터 우리
집의 부녀(父女)는 무슨 음모라도 꾀하듯 속닥거렸다.
그런
사소한 속닥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더욱 무심한 듯 근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딸아이는 작년에 사준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활짝 웃으며 다가오더니
"역시 우리 엄마는 선견지명이 있으셔서...."하면서 갑자기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보니, 작년에 딸아이에게 사준 단지 색깔만 붉은 티셔츠에 대한 이야기였다.
잠시
후 이유없는 속닥거림은 없다는 확증을 나에게 심어주면서 두 사람은 한국 대 프랑스
평가전을 관람하기 위해 나갈 차비를 하였다. 집을 나서던 딸 아이는 예의 그 붉은
티셔츠를 입고, 한 팔을 치켜 올리면서 "대∼한민국"을 힘있게 외쳤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아니...,
웬...., 무슨...."하면서 한참동안 딸아이를 멍하니 쳐다보고 서 있었다.
우리집의
붉은색 티셔츠의 열풍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붉은 티 열풍은 우리가 한 게임을 치를 때마다 열기를 더하며 독일과의 4강전이
있던 날은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었다. 출퇴근길에 마주친 동네 아이들은 모두 다 붉은색
티셔츠에 붉은 두건을 쓰고 있었고, 아주머니와 아저씨들도 모두 붉은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사이 우리집의 붉은 티셔츠도 단지 색깔만 붉은
것이 아닌 동네 상가에서
산 "Be the Reds"로 대체되어 있었다.
이렇게
팔린 붉은 악마의 붉은 티셔츠가 자그만치 2천5백만장이라고 한다. 유행도 이런 유행은
전세계적으로 없었을 것이다.
원래
유행은 fashion으로 정의되어 유행과 의상은 같은 뉘앙스로 쓰인다. 이는 유행중에서도
의상만큼 예민한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유행은 유용성에 대한
스타일(style)의 승리를 의미하며, 기능에 대한 미의 승리를 의미한다. 또한 유행은 소비를
언제나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학자인
지멜(Simmel)은 유행이 생기는 원리는 모방의 원리를 따르는 하위의 사회집단이 상위집단의
의복을 채용하여 새로운 지위를 확립하려고 하려는 데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트리클다운(trickle-down)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현대사회에서의 유행은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반드시 지위에 의한
트리클다운뿐만이 아닌 연령, 젠더, 계급, 직업 등에 의한 선택적 차용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렇듯
유행이 뚜렷한 발생 이유를 가지고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소비문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유행이라는 말만 나오게 되면 이유없는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다. 이는 유행의
추종과 개성없음이 동일시되어 정의되면서 유행에 민감하여 센스있게 소비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개성없다는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단순화한 논리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국민의 이러한 평소의 유행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폭발적인 열정이 없었다면 붉은 악마의 붉은 티셔츠 유행을 창조해 낼 수 있었겠는가?
물론 유니폼이긴 하지만 2천 5백만장이나 팔린 똑같은 붉은 티셔츠를 우리 국민이 사랑한다고
이를 개성 없는 소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조금씩 다른 얼굴 페인팅, 태극기의 사용 등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노력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미적 감각에 예민한 정열적인 우리의 소비문화를 너무 비하해 오고 있지는 않았는가?
경쟁일변도의 삭막한 사회의 이면에서 숨쉴 수 있는 창구로서 소비하는 우리 국민을
개성 없고 과소비 한다고 일방적으로 몰아치지는 않았는가?
붉은
악마의 붉은 티셔츠 유행은 나에게 새로운 다짐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 국민의
소비문화에 대해서도 조금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대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인간은 칭찬받을
때 더 잘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뇌이면서….
■글/송순영<한국소비자보호원 정책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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