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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 권하는 사회
    등록일 2002-05-02 조회수 5321
    상가임대료분쟁크게는다(서울경제신무ㄴ, 2002/04/06)

     소비자칼럼(29)  빚 권하는 사회

    술은 권해야 맛이 있고, 술잔은 돌려야 정이 생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자리에 모이면 술잔을 돌리며 술을 권했다. 이름하여 술 권하는 사회다.

    술 권하는 사회는 귀에 익은 말이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 현진건의 유명한 단편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1921년 <개벽>에 발표된 작품으로 일제 강점하에 지식인의 절망과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현진건의 단편 소설 중 하나다.

    술 권하는 사회의 줄거리

    작중 인물인 남편은 중학을 마치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술을 마시며 귀가하는 등 생활이 문란하다.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술 권하는 사람들을 탓하는데 남편은 술을 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아내는 사회의 개념도 모를 정도로 남편과 학식 차이가 나는데 이것이 남편으로 하여금 더욱 슬프게 한다.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라고 묻는 아내를 밀치고 남편은 대문을 열고 나간다. 아내는 죽은 사람에게나 볼 수 있는 해쓱한 얼굴로 경련적으로 떨며 절망한 어조로 소근거린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신용카드 신용불량자 1백 10만명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의 범인들은 카드빚에 쪼들린 20대인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다단계 판매와 관련된 신용카드의 부작용도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신용카드가 넘치는 사회다.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를 쉽게 만들고, 신용카드를 만만하게 여기고 사용한다. 신용카드는 쉬운 것도 아니고 만만한 것도 아니다.

    잘 드는 칼일수록 잘못 사용하면 크게 다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사용하기 편리하지만 사용자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크게 다치는 것이 신용카드다. 현금을 빌려주고, 할부 구매가 가능하고, 할인·포인트 적립 등으로 현금보다 더 혜택을 주는 것이 신용카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신용카드사는 그냥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다. 잘 나서 고가품을 할부 구매가 가능하게 해주지 않는다. 신용카드를 긁는 것으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할부 구매를 하게 해주는 대신 이자를 받는다.

    카드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현금 서비스는 연리 13∼28% 정도다. 할부 수수료는 10.5∼19%, 연체 이자율은 24∼29% 정도다. 이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대범하게 여긴 상당수의 사람들은 나중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몰랐다고 후회한다.       

    신용카드는 많고, 교육은 부재 상태다. 소비자 스스로 알아서 선택하고 위험을 피해서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용카드의 편리함이 주는 달콤함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재정설계사이자 변호사인 스테판 폴란은 그의 저서 <다 쓰고 죽어라>에서 잘 살려면 현금으로 지불하라고 강조했다.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유명한 재정설계사가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소비는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이루어져야 하는데 신용카드는 소비를 무한정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를 불편하게 만들면 충동적으로 돈을 쓰기 전에 이것이 과연 내게 필요한가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편리한 것이 사람을 구속하고, 불편한 것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셈이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므로 신용 사회를 앞당기는 신용카드를 제대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올해 1·4분기 중 신용카드사가 등록한 신용 불량자가 1백10만여만명에 이르는 것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경제 활동 1인당 4장 꼴로 신용카드를 소유한 이 시대의 소비자는 바야흐로 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한 신용카드 회사에서 필자에게 보낸 안내서에 카드 이용 한도액이 7백만원이라며 빚을 권한다.

    예전에는 술 권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소비자는 신용카드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소비자 교육도 시급하다. "그 몹쓸 사회가, 왜 빚을 권하는고!"라고 중얼거리는 소비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오승건<한국소비자보호원 소비자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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