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비철학

아까운 돈, 반면 아깝지 않은 돈

구채희 <경제 칼럼리스트>

신혼 초에는 그랬다.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도 해보고, 백화점에서 값비싼 옷을 사 입으며 뿌듯함에 젖었던 때도 있었다.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신혼’을 핑계로 소비에 거침이 없던 시절이었다. 당장은 책임져야 할 자녀가 없고, 맞벌이라 월급도 넉넉한 것처럼 느껴져 시시때때로 과잉 소비가 일어났다.

구채희 작가의

한 줄 소비철학

나만의 스토리가 있는 소비

나만의 소비철학을 갖기까지

각종 미디어와 SNS만 보더라도 소비를 한다는 건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소비가 가져다주는 본질적인 행복 보다 돈을 쓰는 재미,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고 있다는 자부심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별다른 원칙과 기준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소비하는 삶은 마음의 허기를 달래 주지 못했다. 지속적인 만족을 얻으려면 더 강력한 자극이 필요한데, 언제까지 지출 규모만 키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뻔한 말 같지만 신혼 때는 사랑하는 남편과의 집 밥 한 끼도 비싼 외식 못지않은 행복감을 느꼈고,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무리하게 카드를 긁어 명품 가방을 사는 것보다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집어 들고 사유하는 일에 더 큰 만족을 느꼈다. 소비의 규모와 행복의 크기는 결코 비례하지 않았다.

추천 하나. 나를 성장시키는 소비

스토리가 담긴 소비는 그 이상의 가치로 돌아온다. 그래서 1천원을 써도 아까운 돈이 있고, 10만원을 써도 뿌듯한 돈이 있다. 나는 ATM 수수료나 공과금 연체료, 택시비 등이 아깝다. 조금만 신경 쓰면 아낄 수 있는 돈인 데도 나의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맞바꾼 돈이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계발에 쓰는 돈, 여행에 쓰는 돈, 가족에게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첫째는 돈을 쓰면서 행복하고 둘째는 나를 성장시키는 소비이기 때문이다.

만약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늦어 택시를 탔다면, 택시비 1만원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최대 가치는 약 20분간의 안락함이 전부다. 겨우 몇 십 분의 안락함을 위해 1만원을 소비하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타고 아낀 돈으로 친구에게 소소한 선물을 하거나 책 한 권을 사는 게 더 의미 있다.

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단골 참치가게에서 10만원을 쓰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로 돌아온다. 특별한 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호사는 부부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주니까. 북카페나 서점에서 쓰는 돈도 마찬가지다.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는 내게 커피값 5천원은 아까운 돈이지만, 북카페에서 마시는 1만원 상당의 음료값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주말에 집에만 있으면 빈둥거리기 바쁜데, 북카페에 가면 기분 전환은 물론 책을 보면서 시간도 생산적으로 쓸 수 있어서다. 나에게 북카페는 내가 쓴 비용 이상의 가치로 되돌아오는 곳이다.

추천 둘. 경험을 사는 소비

나는 저축에 권태감을 느낄 때마다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하며 삶의 활력을 얻는다. 목표를 달성했으면 그에 맞는 보상으로 그간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돈을 모으고 불리는 과정을 감내하는 동력이 될 뿐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도 행복을 맛보게 한다.

특히 경험을 사는 소비를 가장 좋아하는데, 대표적인 게 여행이다. 한 해에 한두 번은 남편과 해외여행을 간다. 작년에는 오사카와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왔고 올해는 뉴욕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분기에 한 번은 국내 여행도 떠난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반응은 대개 이렇다.

“돈 모은다면서 할 거 다 하고 사는군” “연봉이 높으니까 그렇게 쓰고도 남는 거겠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우리 부부가 여행을 위해 나머지 부분에서 얼마나 지출을 통제하며 사는지는 모른다. 한 달 식비가 40만원을 넘지 않고, 두 사람의 품위유지비가 15만원에 불과하며, 커피와 담배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짜 좋아하는 일에 과감히 소비하는 대신 나머지 부분에서 지출을 통제하며 희생을 감내한다. 그럼에도 힘들지 않은 이유는 1년에 한두 번 경험하는 부부의 자유여행이 나머지 1년을 버티고도 남을 만큼 강렬한 행복과 진한 추억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추천 셋.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비

돈을 모으는 궁극적인 이유는 곧 돈을 제대로 쓰기 위함이기도 하다.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일도 포함한다. 나 역시 결혼, 내 집 마련, 출산 등 각종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과분한 응원과 축하를 받았다. 이러한 관심이 얼마나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지 알기에 나 역시 그들의 삶에 의미 있는 애경사가 생길 때마다 힘을 싣고 싶다. 소비를 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자립한다 한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인색하게 굴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성장한다. 내 사람들을 챙기기 위해 몇 만원 더 쓴다고 당장 가계에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 돈 아낀다고 금세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소박한 선물이라도, 그들의 경조사를 잊지 않고 성의를 표하는 것이 소비의 핵심이다.

사람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상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을 표현하고 고마움을 주고받을 수는 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만의 고유한 스토리가 생긴다.

구채희 작가는?

그녀의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싱글 시절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가 모은 돈이 없었고, 남자친구 역시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몇 년째 돌려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 대해 조언을 얻고 싶었지만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이후 갖은 역경을 극복해가며 그녀는 결혼 3년차에 종잣돈 4억 원을 모았다. 그 후 책 「갓 결혼한 여자의 재테크」를 통해 결혼 전후로 겪은 경제적 트러블과 해결법, 자산을 불린 과정 등을 솔직하게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