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치있게

비움의 미학, 디지털 미니멀리즘

매일 아침 7시,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깬 지은 씨는 무거운 눈을 간신히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켭니다. 수많은 정보를 간밤 놓쳤을까 염려라도 하듯, 정신없이 인터넷을 뒤적거리죠. 지은 씨는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도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3개에 달하는 SNS 계정을 살핍니다. 업무시간 중간 중간 지루한 틈에도, 지은 씨의 손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스마트폰입니다. 이런 일상에서 휴대폰을 쏙 빼놓고 나면, 그 시간 지은 씨의 눈과 마음은 둘 곳을 잃을 것만 같습니다.

미니멀리즘, 이제는 디지털도 필요해

단순하고 간결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문화적 흐름,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은 수많은 것이 부족함 없이 넘쳐나는 세상에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무엇이든 과잉된 시대는 정작 우리의 심신을 더욱더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일상 속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비워내며 마음의 짐을 한결 덜어낸 듯한 쾌감을 느낀다고 토로합니다. 하지만 아직 덜어내야 할 한구석은 정작 가득 차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스마트폰은 현대 문명 발달의 결정체로, 어느덧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할 수 있고, 모르는 길을 금세 찾을 수도 있고, 멀리 있는 이와도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죠. 하지만 바로 이러한 편리함이 정작 현대인의 피로를 급증시키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과 시시때때로 주고받는 연락, 끊임없이 울리는 앱의 푸쉬 알림, 빼놓을 수 없는 각종 영상 콘텐츠 시청까지. 전적으로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에 의지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것이죠.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히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곳은 바로 ‘디지털’의 영역입니다.

만능 디지털화 시대, 몸과 마음은 수동적으로

작년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만 3세 이상 국민의 10명 중 9명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진 이 중 10명 중 2명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 상태라는 결과가 도출됐고요. 특히 놀라운 것은,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부모를 둔 아이 또한 위험군에 속할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죠. 더욱이 자신이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다고 느낀 사람들은 조사 대상자의 약 61%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에 가깝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정작 사용 시간을 줄이기는 쉽지 않았다고 밝혔죠.

이처럼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에 따른 여러 신조어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좀비처럼 걷는 사람을 일컫는 ‘스몸비(smombie)’, 전화와 무시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느라 같이 있는 사람을 소홀히 대하거나 무시하는 ‘퍼빙(Phubbing)’,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의미하는 ‘노모포비아(No mobile phone phobia)’ 등이 바로 그것이죠. 실제로 주변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스마트폰 중독일까? 아닐까?

미국의 IT 언론사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내분비학자 로버트 러스티그의 연구 결과를 인용, 휴대폰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은 인간의 두뇌가 일정한 스트레스와 공포의 기억에 빠지도록 훈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뇌의 전두엽 피질에 영향을 미쳐 뇌를 잠시 ‘일시 정지’ 상태로 만들어 집중력을 급감시킨다는 것이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결국 스트레스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스마트폰 사용의 주요 쟁점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줄이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은 아닙니다. 뇌에서 쾌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스마트폰 사용 시 빠르게 분비되지만, 스마트폰이 없어지면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죠. 이러한 생리학적 작용은 스마트폰 중독에서 몸과 마음을 헤어 나오기 어렵게 합니다.

미처 몰랐던 스마트폰 중독 증상

  •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
  • 스마트폰을 하루에 2시간 이상 사용한다
  •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조절하기가 어렵다
  • 스마트폰 키보드를 눈으로 보지 않고도 잘 쓸 수 있다
  • 스마트폰 푸쉬 알림이 뜰 경우 곧바로 확인한다
  • 스마트폰 때문에 학업이나 업무에 지장이 있다
  • 스마트폰 때문에 주변 사람과 다툰 적이 있다
  •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중독 극복하는 더 가치있는 기술

‘관둘래 이놈의 정보화 시대, 단단히 잘못됐어 요즘은 아는 게 더 괴로운 것 같은데…?’ 유행했던 한 노래의 가사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을 괴로워하며 시대를 역행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IT 회사는 ‘Go light’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최소한의 기능만을 탑재한 휴대폰을 개발했습니다. 전화, 문자, 주소록, 알람, 내비게이션, 음악 재생 등 꼭 필요한 기능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light phone’이 그 주인공입니다. 시대를 역행한 제품이 과연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정보화 시대에 지친 이들은 이 기기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라이트 폰은 크라우드펀딩에서 5억 원 가량의 투자를 끌어내, 성공적으로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죠.

©thelightphone

또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앱도 등장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 앱은 일정 시간 외에는 기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잠금 처리하거나, 오랜 시간 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일정 보상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솔루션을 통해 중독을 방지합니다. 물론 이런 도움 없이도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각종 SNS에서는 ‘디지털 디톡스’라는 이름 아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려는 사람들의 캠페인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 대신 책을 읽거나 요리를 하는 등 보다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것을 하루하루 인증하는 것으로 그 노력을 전하는 것이죠.

아래로 향한 눈은 세상을 올곧게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화면 속 세상의 수많은 것을 살피는 동안, 정작 소중한 사람과 눈을 맞출 시간은 잃어가고 있습니다. 영혼이 풍요롭게 일궈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마음이 정보에 물결에 쓸려가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를 기억한다면, 혼란한 세상 속 심지 굳은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