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비철학

청정 제주를 위한 행복한 불편

이신선 (서귀포 YWCA 사무총장)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참 좋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는 편이다. 타 지역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고향이 제주라고 하면 사람들은 단번에 제주사람이냐고 되묻는다. 아마도 소통을 편하게 하고 싶어 ‘제주어’가 아닌 표준말을 선택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게 제주사투리를 은근 기대하는 듯하다. 그 기대에 살짝 맛배기 사투리를 들려주면 조금 더 깊이 제주에 대해 물어온다. ‘제주 요즘 많이 핫하죠? 너무 좋죠? 제주 어디가 제일 좋아요?’ 제주라는 이유로 많은 환대와 관심을 받는다.

이신선 작가의

한 줄 소비철학

친환경적인 삶, 불편함 맞닥뜨리기

나만의 소비철학을 갖기까지

사람들이 제주의 숙박부터 관광지, 음식점, 카페 등을 많이 물어봐서 때론 관광객처럼 제주의 이곳저곳을 다녀보기도 한다. 또 국내외로 다닐 일이 많아 제주를 벗어날 때마다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사는 제주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구나’하는 점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제주에 살아서 행복한 이유다. 그러나 제주가 큰 주목을 받게 되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유명 관광지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고 이로 인한 소비도 늘어난다. 내가 하는 소비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소비와 그 결과는 대부분 쓰레기와 같은 부작용이 돼서 돌아온다. 그동안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된 자연과 조금 더 편하게 살아온 우리의 생활이 현재와 미래의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의 자연을 내가 누린 만큼 내 아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친환경적인 삶, 불편함 맞닥뜨리기’를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추천 하나.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 찾기 힘들어

얼마 전 회의가 있어 서귀포시청을 방문했다. 그동안 물과 종이컵이 놓였던 자리에 스테인리스 컵이 놓여있다. 일회용품 자제를 위해 관공서까지 나섰다. 특히 도내 기관 단체에서도 동참해 이제는 일회용품을 많이 쓰는 장소 중 하나인 장례식장에서도 일회용품을 볼 수 없다. 종이컵, 종이접시, 나무젓가락, 테이블에 까는 비닐 등 편하게 사용했던 물품이 사라진 것이다. 한 예로, 이전에는 장례식장 내 총 9개 빈소에서 한 달 간 최대 27만 개 종이컵을 썼다면 요즘은 컵 5000여 개를 한꺼번에 구입해 씻어 쓰고 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없애는 것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제주에서는 오래 전부터 ‘장례식장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이 있어왔지만 번거롭다는 이유로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2016년, 제주시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장례식장, 외식업중앙회, 상조업체 등을 모아 간담회를 여는 등 일회용품 없애기 운동을 본격 추진했으며, 시청직원들이 상을 당했을 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도록 협조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여기에 시민과 기관 단체도 힘을 보탰다.

물론 시행 초기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마을회나 상조업체의 불평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회용품을 사서 쓰는 비용이나 일반컵을 사용하여 씻는 인건비나 별반 차이가 없음이 파악되니 비용을 부담하는 상조업체의 불평이 사라졌다. 쓰레기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서인지 큰 갈등 없이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약 3년 정도 걸린 셈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제주인구, 그에 따라 쓰레기 발생량도 급증하고 있다. 쓰레기는 처리도 중요하지만 발생부터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제주의 관공서와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 찾기, 이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추천 둘. 마트에 종이박스가 없다고요?

몇 년 전 제주도가 최초로 마트 내 자율포장대의 종이박스를 없앴다. 정말 과감한 시도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구입한 물건들을 종이박스에 담으려고 했는데, 종이박스를 쌓아두었던 공간이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물론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긴 했으나 많은 물건을 다 담을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관광객들도 우리 동네에서는 주는데 ‘이 편한 걸 왜 없애느냐’는 볼멘소리를 했다. 종이박스에 테이프를 붙여서 그대로 버리고, 상자 안에 무단으로 쓰레기를 투척하는 등 또 다른 2차 쓰레기문제가 유발되어 과감히 제주에서 시도한 정책이다. 3년이 지난 지금 지역사람들은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이 장바구니 안 들고 온 스스로를 탓한다. 환경을 위해 행복한 불편을 감수한 작은 변화이다.

추천 셋. 쓰레기 줄이기 시민실천 운동 함께 해요

25년쯤 전이다. 전국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될 때쯤, 제주도에서 쓰레기종량제봉투 사용이 시범 실시됐다. 소비자단체인 YWCA에서도 쓰레기종량제 모니터단을 모집해 교육하고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했다. 모니터링 활동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YWCA 실무책임을 맡고 있던 나는 새벽 3시, 종량제봉투 사용 확인을 위해 쓰레기수거 차량에 몸을 실었다. 너무 이른 새벽이었고, 냄새나는 쓰레기 수거 차량이라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더 힘든 건 우리가 버린 쓰레기의 양이었다.

그동안 편하게 사용하고 버려졌던 일회용품이 결국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새벽에 쓰레기를 내다 놓으려 나왔던 친구가 나를 보고 놀라며 “어떻게 된 일이야?”라고 묻고는, 어깨를 토닥이며 돌아갔던 일도 기억난다. 이처럼 예전에도 쓰레기문제는 심각했는데 20년이 훨씬 지난 요즘도 여전히 이슈인 쓰레기 문제를 보면서 친환경적인 삶이 쉽지만은 않음을 또 다시 느끼게 된다.

최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제주 서귀포에 민관이 함께 쓰레기 줄이기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질적인 감량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쓰레기 줄이기 시민실천 운동본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을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다.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하는 클린하우스 주변에 쓰레기가 넘치지 않도록 작은 텃밭을 가꾸었다. 재활용 나눔장터를 주기적으로 열어 수익금 전액을 지역에 교육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쓰레기 줄이기 시민의식 교육과 쓰레기 배출 모니터링을 통해 시민들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했던 ‘쓰레기 요일제 배출’까지 정착시켰다. 함께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신선 사무총장

이신선 사무총장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그동안 봉사해왔던 YWCA에서 내민 손을 거절 못하고 몸 담아 25년 넘게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시민운동을 하던 중 시민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마음의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시민들에게 평생교육을 펼치고, 성평등운동, 환경운동, 일자리 문제 등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또 대학 강의와 함께 현장의 시선으로 사회문제를 담아낸 칼럼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