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추천정보

미닝아웃, 일본 불매운동이 오래갈 수밖에 없는 이유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트렌드 분석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올해 한국 소비자 이슈 중 단연 뜨거운 이슈다. 대개 불매운동을 하면 한 두 달 이러다 말겠지 하는 시각이 있었다. 특히 과거엔 이런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문제가 된 기업 중에서도 잠시 소나기만 피해가면 된다는 곳도 많았다. 반성보단 적당히 사과하는 쇼를 벌이고, 잊을 즈음 되서 대대적 마케팅이나 할인으로 언제 불매운동이 있었냐는 듯 지나갔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아직도 불매운동에 대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닝아웃’으로 인해.

미닝아웃이란 무엇일까?

미닝아웃(Meaning out)은 20,30대 소비자를 비롯해 40대들까지도 적극 받아들이고 있는 소비 트렌드다. 소비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부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그렇지 않은 제품과 서비스에는 불매를 하는 태도다.

미닝아웃

소비를 할 때, 신념(Meaning)을 적극 드러내는(Coming Out) 것이라고 해서 이를 줄여 미닝아웃이라 부른다.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기능, 가격 등만 고려해 소비하는 게 아니라, 그 제품을 만든 기업이나 오너의 환경, 윤리,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서까지 고려하겠다는 의미기에 소비자의 진화된 소비행태로 볼 수 있다.

미닝아웃이 소비 트렌드가 된 것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가 본격적으로 소비에 나서면서다. 과거에도 미닝아웃에 해당되는 가치 소비에 나서는 이들이 있었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환경, 윤리, 젠더, 사회적 책임 등의 이슈를 과거 세대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건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과거 세대보단 훨씬 풍요로워진데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태도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 드러내며, 신념과 태도에 대해 연대한다. 개인주의적이며, 자신의 즐거움이자 일상적 행복에 주목하는 세대로만 그들을 봤다면 오산이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 특징

제품, 가격 비교 및 리뷰 검색

SNS를 통한 연대

개념소비 주도

불매운동 적극 동참

밀레니얼 세대가 일본제품 불매에 가장 적극적인 이유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리얼미터가 세대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동참 의사를 조사(7월 31일)한 결과에 따르면, 모든 연령대 중 현재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은 것은 20대(75.5%)였다. 향후에도 참여할 것이라는 응답도 20대(85.1%)가 가장 높았다.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60대 이상의 응답이 43.2%에 그친 것과 비교해 봐도 20대가 훨씬 더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일본인에 대한 호감도는 20대가 가장 높고, 60대는 비호감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한국 갤럽이 1991년부터 일본 호감도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지난 7월 조사에서 역대 최저의 호감도를 보였다. 이중 20대는 일본인 호감도 54%, 비호감도 29%인데 반해 60대 이상은 호감도 32%, 비호감도 51%로 나타났다.

이 두 가지 조사 결과는 서로 상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일본 제품 불매에 가장 적극적인 20대는 일본인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았고, 일본인에 대한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60대 이상은 일본 제품 불매에 가장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60대 이상이 일본 제품 불매에 가장 적극적일 것 같았는데, 일본은 싫지만 일본 물건을 인위적으로 거부하진 않겠다는 것으로 보여 진다. 즉, 자신의 신념과 소비를 별개로 보는 셈이다.

반면 20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목소리를 적극 드러낸다. 20대는 일본이나 일본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경제보복이자 혐한에 대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저항은 경제적 타격을 주는 것이다. 자신이 소비한 일본 제품은 결국 일본 기업과 일본 경제에 기여하는 셈이고, 이는 곧 일본 정치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지금은 밀레니얼 세대가 일본제품을 사지 않고, 일본여행을 가지 않는 불매운동에 가장 적극 나서고 있고, 이들의 불매는 미닝아웃이 강하다. 결코 일시적인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인 논리적 대응이다. 이런 경우 오래갈 수 밖에 없다. 자발적으로 확산된데다, 자신의 신념에 비춰볼 때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슈를 무역보복으로 연결시킨 일본 정부의 행동은 부당하고, 이에 대해 정당한 저항으로 불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환경, 페미니즘... 지금은 미닝아웃 시대

01왜 스웨덴에선 비행기 타는 걸 부끄럽다는 사람들이 등장했을까?

스웨덴에는 플뤼그스캄(flygskam) 이란 말이 있다. 이는 영어로는 flight-shame이 될 텐데, 비행기 여행의 수치심 정도로 해석된다. 즉, 비행기를 타고 여행가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란 얘기다. 공항이나 비행기 좌석에서 찍은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이들도 많은데, 왜 비행기 타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등장한 걸까? 바로 환경 문제 때문이다. 비행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문제 때문에 비행기 여행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기차가 14g, 항공기는 285g이다. 기차 대비 비행기가 무려 20배 정도 많다. 이 계산은 기차에 150명이 탔고, 비행기에 88명이 타고 있다는 전제로 나온 계산인데, 만약 기차에 더 많은 사람들이 타게 되면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더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에선 비행기 이용객이 계속 줄어드는 중이다. 반대로 기차이용객은 급증세다. 이처럼 유럽 사람들은 유레일 철도를 이용해 국경을 넘나들면 되지만 우리나라처럼 해외로 가려면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하는 상황에선 어떡해야 할까. 우리는 탄소배출이 적은 항공사를 선택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탄소배출량 최상위 항공사는 한국의 국적기였다.

소비자가 이런걸 민감하게 여길수록, 기업도 바뀔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제품 포장박스 안에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을 다 없애려 하는 것도 재활용과 환경문제 때문이다. 기업이 착해진 게 아니라 미닝아웃하는 소비자 때문이다.

02왜 잘나가던 속옷 회사가 위기에 빠졌을까?

‘빅토리아 시크릿’이란 미국의 유명 속옷 브랜드가 위기를 맞고 있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하락세고, 주가는 폭락에 가깝다. 잘나가던 회사가 위기에 빠진 건 젠더 마케팅에 거부감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 때문이다. 이 브랜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8등신 미녀를 내세워 외모지상주의를 부각시키는 마케팅을 해왔다. 기존 소비자는 그걸 받아줬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달랐다. 바디 포지티브, 자신의 몸을 스스로가 당당하게 아름답게 여기는 트렌드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위기와 반대로 ‘에어리’라는 속옷 회사는 매출이 계속 증가세다. 이 브랜드의 모델은 현실에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몸매와 외모의 모델들이다. 살짝 배도 나왔고, 보정을 하지 않아 잡티나 주근깨도 그대로 노출시킨 광고 사진을 활용한다. 두 속옷 브랜드가 서로 엇갈린 결과를 얻는 건 미닝아웃 때문이다. 소비자는 외모차별 마케팅을 부당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또한 구찌, 샤넬, 프라다 등 세계적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모두 모피를 퇴출시켰다. 모피를 비윤리적 이미로 받아들이는 소비자 때문이다. 여전히 모피를 만들어도 팔리긴 하겠지만, 비윤리적 기업으로 찍혀 불매 당하고 외면당하는게 더 큰 손해다.

미닝아웃이 일상화된 밀레니얼 세대를 위해 기업은 사회적 가치 확산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 소비자가 기업을 바꾼 것이다.

미닝아웃은 계속 진화 중

간혹 미닝아웃의 부작용에 대한 얘길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놀랍게도 대부분 기업들이다. 불매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업으로선 미닝아웃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미닝아웃은 감정적인 집단 대응이 아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이다. 즉 기업이 환경, 윤리, 젠더, 사회적 책임, 갑질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불매의 타깃이 될 일이 없다. 물론 가짜뉴스로 인한 오해로 불매 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금방 들통 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미닝아웃의 부작용은 미닝아웃으로 인해 기업이 변화할 것에 비해선 아주 미미하다. 오히려 미닝아웃이 지금 시대 소비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을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더 크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소비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신념과 목소리를 드러내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소비를 하는 것뿐이다. 미닝아웃은 소비자 진화의 결정적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