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취미는 덕질

공놀이에 담긴 희로애락
“야구? 끝날 때까지 몰라요!”

글·전상규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 저자>

야구는 끝까지 가보지 않는 이상 결과를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도 홈런 한 방이 있다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은 종료 신호가 울리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고, 타격하며, 달리죠. 이 모습을 지켜보는 팬들은 선수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합니다. 언젠가 찾아올 역전과 짜릿한 승리를 기다리면서요. ‘LG트윈스’의 찐팬 전상규 작가님은 유년 시절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야구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고 하는데요. 취미는 덕질 6월호에서는 야구가 전하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Q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밴드 ‘와이낫’의 보컬이자 작사, 작곡, 노래, 연주를 하는 음악인 전상규입니다. 홍대 인디밴드부터 영화·드라마·광고까지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프로야구, 그중에서도 ‘LG트윈스’를 좋아하는 골수팬인데요. 응원가를 만들어 시구도 하고 선수들의 사용하던 글러브까지 받았으니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야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야구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어릴 적 제 또래는 모두가 베이스볼 키드였어요. 동네 골목에 모인 아이들은 공과 배트를 들고 각자의 규칙으로 야구를 했죠. TV에서 야구를 중계할 때면 피리 부는 마법사를 따라가듯 집으로 사라졌고요. 당시 야구는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었어요. 매달 발행된 소년 잡지에는 야구 관련 기사가 가득했고, 부록 만화도 야구 내용이 주였거든요. 그 정도로 야구는 한 세대를 주름잡던 키워드이자 문화 자체였다고 봐도 무방해요. 1982년에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려 김재박 선수의 개구리번트와 한대화 선수의 3점 홈런이 터졌고, 국내 프로야구도 시작되었어요. 소년들에게 야구라는 넓은 세계가 열린 것이죠. 저 역시 야구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1982년 프로야구 팀 ‘MBC청룡’ 창단식 (출처 : 서울기록원)

Q

잠실경기장 마운드에서 시구를 하고, 프로야구 중계에 출연해 응원가를 부르는 등 야구팬들 사이에서 소문난 덕후세요.
야구의 매력,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야구는 다른 스포츠랑 다르게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있습니다. 홈런왕이라 해도 자신의 타순이 되어야 타석에 설 수 있어요. 뛰어난 선발투수도 화요일에 등판했다면 일요일까지 기다려야 하고요. 좋은 수비력을 가진 유격수도 바로 옆 3루수 쪽 타구를 처리할 수는 없어요. 오롯이 공과 맞닿은 선수가 그 순간만큼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이걸 민주적인 스포츠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확실한 건 누구 하나가 잘한다고 모든 걸 바꿀 수 없는 스포츠라는 거예요. 한국 프로야구는 1년에 144경기를 합니다. 평균에 수렴하는 리그죠. 60%의 확률로 이기고 있으면 챔피언이 되지만, 꼴찌 팀도 40%는 이깁니다. 일등이든 꼴찌든 자기의 스토리가 있는 스포츠. 그 스토리가 모두에게 전해지는 스포츠. 이게 바로 야구의 매력이죠.

Q

‘덕질’하면 ‘굿즈’가 빠지지 않는데요.
자랑하고픈 굿즈 소개 부탁드려요!

A

오랜 시간 야구를 좋아해 온 덕후로서 선수 유니폼, 사인볼 등 정말 많은 굿즈를 모았어요. 제 작업실 한편이 야구와 관련된 것들로 쌓여있을 정도니까요. 그중에서 정말 아끼고, 자랑하고 싶은 건 선수들이 실제로 쓰던 야구용품들이에요.

좋아하는 팀과 음악으로 엮일 방법은 무엇일까 고심하던 때, ‘LG 트윈스’에서 응원가 공모전을 진행했어요. 이 기회를 확실히 잡아보고자 열심히 작업했고, 당선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구단 측에서 무얼 받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주저 없이 시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응원팀의 홈구장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한다는 건 야구 덕질의 끝입니다. 사실 덕질의 영역을 넘어섰죠. 근데 그걸 제가 한 거예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다리가 떨립니다. 시구가 끝난 후, 제가 던진 공을 받아주었던 선수로부터 야구용품들을 선물 받았는데요. 이 용품들은 야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소개하는 평생 자랑거리가 되었답니다.

이듬해 또 공모전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두 곡이 당선됐어요. 그때는 유격수 오지환 선수와 투수 임찬규 선수의 글러브를 받고 싶다고 했죠. 선수들의 사인이 새겨진 글러브를 받고 나니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더군요. 수많은 굿즈와 사인볼이 있지만, 이것들은 정말 제 덕질 인생의 전리품입니다.

공모전 당선 후 받은 글러브

Q

야구팬들은 선수들이 잘해도 화가 나고, 못해도 화가 난다고 해요. 작가님께서도 공감하시나요?

  승리 패배
점수차 큼 다음 경기랑 나눠서 치지,
이래놓고 내일 안 치려고
점수차 작음 이겨도 겨우 이기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못하던가 시간 낭비했네
승리
점수차 큼
다음 경기랑 나눠서 치지, 이래놓고 내일 안 치려고
패배
점수차 작음
이겨도 겨우 이기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못하던가 시간 낭비했네
A

하루에 국내 프로야구 10팀 중 5팀은 집니다. 또 1년에 144경기를 진행하는 야구 특성상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겠어요. 외부에서 볼 때는 누군가 항상 화를 내고 있다고 볼 수밖에요.(웃음) 그래서 많은 분이 야구팬을 보고 이렇게 말하곤 해요. ‘쟤들은 항상 화가 나 있어?’ 하지만 이긴 날은 대체로 기분이 좋아요. 물론 이겨도 화가 난다는 말도 맞는 얘기에요. ‘왜 전 경기는 이렇게 못했어?’ ‘이번에 잘 낸 점수, 좀 나눠서 내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거든요. 팬이라는 게 그래요. 선수나 감독, 코치는 팀을 옮기거나 은퇴하기도 하지만 팬은 트레이드도, FA*도 없어요. 심지어 은퇴도 못 합니다. 화가 나도 별수 있나요? 나이가 들어도 좋아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같이 있어야죠.

*

일정 기간을 채운 후 모든 구단과 계약할 수 있는 자유 계약 선수. 매우 드물게 이런 기회를 잡는 선수는 큰돈을 번다.

경기 관람 후 뒤풀이 하는 LG트윈스 팬들 (맨 우측이 전상규 작가)

Q

‘집관 vs 직관*’ 선호하는 야구 관람 방법은 무엇인가요?

A

이제는 중계방송으로 투수가 공을 어떻게 쥐는지까지 볼 수 있는 시대에요. 기술이 발전하고 각종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팬들은 야구에 대해 더욱 빠삭해졌습니다. 집에서도 경기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죠. 야구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보고 싶다면 중계방송을 통한 집관이 훨씬 더 많은 걸 제공할 거예요.

직관하는 건 다른 얘기에요. 야구장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개표구를 지나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짓는 눈웃음에서, 야구장의 초록빛 잔디에서 나는 냄새. 수많은 감각을 통해 온몸에 전달되는 거라서 중계방송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죠.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선수들의 몸 푸는 장면이나 시원하게 들이켜는 맥주 한잔의 느낌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만큼 충분히 가치 있어요. 이처럼 집관과 직관은 각각의 장점이 존재해요. 저는 두 가지를 모두 번갈아 경험하길 추천합니다. 중계방송을 볼 땐 야구장 현장이 그리워지고, 야구장에선 중계방송의 섬세함이 보고 싶어지니까요.

*

집관 : 집에서 중계방송으로 관람, 직관 : 야구장에서 직접 관람

Q

올해 야구를 사랑하는 팬심을 기록한 책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를 발간하셨습니다.
어떤 책인지 소비자시대 독자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A

2022년에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라는 책을 냈어요. ‘LG 트윈스’가 우승을 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어요. 우승하지 못했지만요.(웃음) 올해 발간한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는 ‘LG 트윈스’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진출했던 2002년부터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의 얘기를 덧붙인 책이에요. 일종의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의 증보판이죠. ‘LG트윈스’ 팬이라면, 아니 야구팬이라면, 사실 무언가를 정말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것을 한껏 좋아한 이야기’ 이게 이번에 추가한 부제거든요.

Q

야구팬은 응원 구단과 한 팀으로 살아간다고 해요. 작가님에게 ‘LG 트윈스’란 어떤 존재인가요?

A

야구는 저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애틋하고 고마운 존재예요. 하지만 ‘LG 트윈스’는 좀 달라요. 지긋지긋한 첫사랑 같달까요? ‘그래, 이제 그만하자’고 결심한 다음 날 밤에 ‘자니...?’하고 문자를 보내는 그런 존재요. 너무 오랫동안 힘들게 해서 야구가 시작하는 오후 6시 30분에 약속도 잡아보고 새로운 취미도 찾아봤어요. 결국 중계방송 앞으로, 경기장 안으로 돌아가더군요. ‘LG 트윈스’는 1990년에 창단했어요. 전신인 MBC청룡은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하면서 생겨났고요. 한 팀을 응원한 지 40년이 넘었네요. 이토록 야구가 감정을 자극할지 몰랐고, 지금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쨌든 29년 만에 우승하고 나니 헤어진 첫사랑과 재회한 것 같기도 하고, 첫사랑과 닮은 새로운 인연을 만난 것 같기도 하네요.

Q

‘LG 트윈스’가 2023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였습니다. 29년 만의 우승이라 오랜 팬으로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당시 기분은 어떠셨나요?

A

우승을 결정짓는 공이 ‘LG 트윈스’의 2루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갔어요. 오랫동안 기다렸던 순간이었죠.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큰 감정이 생기지 않았어요. ‘이게 뭐라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관람하고 있었어요. 즉 관중 대부분은 제 뒤편에 있었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고 어떤 표정일까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때 알게 되었어요.

팔짝 뛰며 환하게 웃는 어린아이. 두 팔을 하늘에 뻗으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청년.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는 중년. 아, 그래.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지었던 표정들이 다 저기에 있구나. 그제야 감정이 차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LG트윈스’는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휘장을 어깨에 걸치고 새로운 시즌을 뛰고 있어요. 영광의 순간이 이렇게나 짧다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순간이 다시 찾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Q

‘2024 KBO 리그’가 한창입니다. 야구 덕후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계시나요?

A

야구팬도 선수들과 비슷한 멘탈 케어가 필요합니다. 잘되지 않은 것들을 빨리 잊고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죠. 물론 어렵습니다. 결국은 매 경기 기뻐하고 분노하는 걸 넘어서, 공 하나하나에 환호하고 욕하면서 무한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답니다. 이건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팀 팬이건, 최하위에서 허덕이고 있는 팀 팬이건 똑같을 거예요.

야구는 평균에서 살짝 넘게 이기거나 지는 공놀이입니다. 절반에 가까운 확률로 감정은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요동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마음껏 환호하고 마음껏 욕하면서 즐기려고요.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잖아요.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야구도 마찬가지예요. 가끔은 실망감을 안겨줄 거예요. 대신 그만큼의 기쁨을 주겠죠. 저는 야구가 주는 모든 것을 받아내면서 살아갈 겁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오랜 친구처럼요.

전상규
작가

작사, 작곡, 노래, 연주를 하는 음악인. 밴드 ‘와이낫’의 보컬로 10장의 앨범을 내고 2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 ‘타틀즈’를 결성해 전레논으로 활동 중이다. 원년 MBC청룡 어린이 회원 가입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후, 지금까지 오랜 야구팬이자 LG트윈스의 팬. 잠실야구장 마운드 위에서 시구한 경험은 평생의 자랑이다. ESPN의 한국 프로야구 중계에 출연해 기타를 치며 LG트윈스 응원가를 부르는 기염을 토했다.

주요 저서야구도 널 사랑해줬어!,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

팟빵전상규의 야잘잘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

지금 소비자시대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