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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덕질

나뭇잎 한 장이 건네는 위안
“오늘도 자연과 만나러 갑니다”

글·한수정 <‘나뭇잎과 스탬프’ 저자>

차디찼던 계절이 지나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 이맘때가 되면 땅속에 잠들었던 씨앗들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꽃을 피웁니다.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아나고요.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으면 경이롭다고 느껴질 때도 있죠. 식물의 생애를 지켜보던 한수정 작가님은 식물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생명력과 변화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요. 취미는 덕질 3월호에서는 때론 즐거움을, 때론 위로를 전달하는 식물의 매력에 대해 알아봅니다.

Q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자연과 사람의 연결점을 찾아가는 한수정입니다. 글과 그림을 그리는 식물 세밀화가로 일하다가 현재는 생태 스탬프를 제작·활용해 생태 교육을 하고 저술 활동도 함께 하고 있어요.

저는 식물 중에서도 나무를 좋아해요. 제가 만나는 아름다운 나무들의 모습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나뭇잎과 열매, 가지, 꽃 등을 그려 스탬프로 만들고, 이를 널리 알리는 생태교육을 시작했는데요. 스탬프는 유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Q

작가님 SNS에는 식물 사진과 그림이 가득해요. 식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시간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가요. 당시 20대 중반이던 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무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물농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눈앞에 펼쳐진 식물을 본 순간, 미술을 공부하면서 갈구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뒤로 아버지께 부탁해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식물과 인연을 맺게 됐죠. 약 4년간 식물을 키우고 돌보면서 자연스레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식물에 깊이 스며든 시기는 춘천으로 이주한 2014년쯤이에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외국 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낳고, 식물 세밀화 공부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요. 당시 저는 산후우울증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래서 매일 근처에 있는 ‘강원도립화목원’에 찾아가 나무 모습을 관찰하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변화를 그림으로 그리며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어느새 화목원의 나무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더군요. 이후 나무가 눈에 보이면 관찰하는 일상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Q

식물의 매력,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라 처음엔 식물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끌렸어요. 각 식물들이 가진 고유의 구조와 질감, 색 등 인공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비로움과 무궁함이 매력으로 다가왔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다움의 실체는 ‘생명력’으로부터 비롯됨을 깨닫게 되었고, 식물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꽃이 활짝 핀 순간뿐만 아니라 싹이 트고, 잎이 지고, 열매가 나는 모든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왔죠. 식물은 어느 한순간도 무가치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어요. 특히 나무는 변함없이 한자리에 서서 자신을 내보이며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을 그대로 드러내죠. 이처럼 삶의 원리를 알려주고, 한 생명으로서 살아갈 힘을 주는 식물 자체의 모습이 식물이 가진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Q

계절에 따라 식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때마다 느끼는 바도 남다르신 것 같아요.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인가요?

A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가을을 무척 좋아해요. 예전엔 가을을 단풍이 예쁜 계절로만 여겼는데, 나무의 일 년을 지켜보고 맞이하는 가을은 그 의미가 더욱 크고 깊다고 느껴요. 겨울을 지낸 식물은 이른 봄에는 꽃과 잎을 터뜨리고, 여름내 풍성하게 키우며, 온갖 열매를 맺은 가을에 가진 모두를 떨궈내는데요. 가을은 그러한 자연의 원리 속에서 숨은 뜻을 발견하고 음미하며 사색하기에 무척 좋은 계절이에요. 또한 다채로운 색과 형태, 상황들이 어디에서나 연출되죠. 한 그루의 나무에서도 낙엽의 색은 제각각이고, 한 장의 나뭇잎 안에 내재된 붉은 빛도 깊이가 다 달라요. 그리고 떨어진 잎은 다른 생명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땅을 덮어주고 거름이 되어줘요. 가을은 계절, 그 이상을 느끼게 해주는 시기인 것 같아요.

Q

최근 「나뭇잎과 스탬프」를 발간하며 자연을 이용한 놀이법을 소개해 주셨어요.
어떤 책인지 소비자시대 독자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A

지난 10년 동안 식물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려오면서 스탬프를 만들었어요. 그림 외에 즐거운 미술 기법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해왔죠. 특히 나뭇잎 모양의 스탬프를 만들면서 스탬프 매력에 푹 빠졌어요. 이유는 스탬프를 만들고 찍어봄으로써 나무를 쉽게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나뭇잎과 스탬프」는 나뭇잎을 관찰하고 스탬프로 만들며 터득한 제 경험과 방법들을 정리한 실용서입니다. 스탬프 제작 방법뿐만 아니라 미처 보지 못했던 주변 나무들의 잎을 자세히 알아보고 관찰하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을 거예요. 식물로부터 느꼈던 즐거움, 치유, 충만함 등을 모두 담고자 한 책인 만큼 독자분들에게 소소한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나뭇잎 스탬프 제작은 생소하지만,
어쩌면 특색 있는 취미가 될 것 같아요.
제작한 스탬프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A

나뭇잎 스탬프의 가장 큰 역할은 사람과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냥 지나쳤던 내 주변의 낯선 나무가 나뭇잎 스탬프를 만들고 찍어봄으로써 익숙해지고 가까워지거든요.

저는 자연과 연결되는 하나의 기법을 제시할 뿐, 활용에 있어서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상상력과 응용력을 발휘해 사용하면 될 것 같아요. 실제로 선생님의 경우 아이들과의 생태미술활동에 사용하고 있고, 농부님들은 농산물 포장, 혹은 생태체험에 사용하고 계세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뭇잎 스탬프는 식물과 친해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도구니까요.

Q

봄을 맞이한 3월, 요즘 같은 때에 눈여겨볼만한 식물이 있다면?

A

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나무라면 산수유나 벚나무를 먼저 생각하지만, 그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어요. 바로 ‘회양목’입니다. 이름은 낯설지 모르겠지만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아는 나무죠. 건물 주변, 학교 교정, 공원, 아파트 단지 정원 등 한 번쯤 본 적 있으실 텐데요. 이렇게 흔한 나무지만 꽃을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어른 손톱보다 작은 노란 꽃이 나뭇잎 사이에 조그맣게 피어 눈에 잘 띄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산책을 할 때면 빠지지 않고 회양목 꽃과 열매를 소개해 주는데, 많은 분들이 감탄하세요.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요.

이른 봄이 다가왔을 때 회양목의 동그란 잎들 사이에 피어난 작은 꽃을 보고 나면, 늦봄에는 동그란 모양에 뿔이 세 개가 돋아난 형태의 열매를 찾아볼 수 있어요. 열매가 익으면 세 갈래로 벌어져 마치 부엉이 얼굴 같기도 하답니다. 꼭 박혀있는 검은 씨앗은 눈처럼 보여 웃음이 나지요. 가장 가까운 주위의 나무들과 먼저 친해져 보세요. 그 변화를 지켜보는 행복을 놓치지 마시고요!

Q

식물 덕후로서, 올해 꼭 해보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A

햇수로 4년째 텃밭 농사를 지어오고 있어요. 네 번의 농사 경험이 있으니 왕초보는 아니지만 여전히 배워야 할 것 투성이네요. 작년엔 주변에서 어렵게 토종씨앗을 구해 뿌려보았는데 결과는 처참했어요. 괜히 귀한 씨앗만 버리고 말았지요. 그 계기로 농사를 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마침 제 수업을 들으러 오신 분 중에 텃밭연구소를 운영하며 토종작물을 키우고 가르치는 농부님이 계셨어요. 관심사를 말씀드리니 농사를 배우러 오라고 하셔서 올해는 시간을 내어 가보려 합니다. 정말 귀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사실 시간이 녹록지 않지만 농사는 저에게 일상의 기쁨이자 노후대비책이에요. 또 모르죠. 언젠가는 텃밭 식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스탬프를 만들어 전시를 하게 될지요. (웃음)

한수정
작가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졸업 후 아버지의 농장 일을 도우면서 식물에 관심이 생겼다.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진로를 모색하던 중, 영국 식물화가 협회 Society of Botanical Artists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식물화를 배웠다. 6년의 외국 생활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춘천에 자리 잡고 강원도립화목원의 협력 작가로 활동하며 나뭇잎 스탬프와 나뭇잎 포스터를 제작했다.

주요 저서나뭇잎과 스탬프, 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 하루 5분의 초록

인스타그램@soojungh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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