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소비심리의 비밀

구매율을 높이는 가격이 있다?

현준 씨는 IT 기기 마니아입니다. 오늘 현준 씨가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새 스마트폰이 출시됐습니다. 이백만 원 가까이 되는 휴대폰의 가격에 사람들은 ‘너무 비싸다’며 혀를 찹니다. 현준 씨는 합리적인 소비자이기 때문에 곧장 스마트폰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1년을 기다리자 가격이 조금 내려갔고, 현준 씨는 이때다 싶어 스마트폰을 구매하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마침 해당 브랜드의 신제품 출시 소식이 들려옵니다. 기능과 디자인도 더 좋아졌고, 가격은 이전해 출시했던 휴대폰과 비슷하게 이백만 원을 웃돕니다. 현준 씨는 최신품과 신품 중 어느 것을 사야 하나, 아니면 또 가격이 내려가기를 기다려야 하나 갈등에 빠지고 맙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왜 이렇게 비쌀까

이렇게 현준 씨가 산 프리미엄 휴대폰처럼, 시장에서는 제품의 초기 가격이 높게 책정됐다가 가격이 점점 내려가는 현상이 존재합니다. 바로 ‘스키밍 가격 전략(skimming pricing)’ 때문인데요. 스키밍은 우유에 잔을 따른 후 위에 떠 있는 가장 맛있고 고소한 지방층만을 걷어내 먹는 것을 뜻합니다. 매력적인 제품의 모습이 시장에 최초로 드러났을 때 소비자의 구매 욕구는 극에 달하기 마련인데요. 이 시점, 가격을 높게 제시하면 아무리 높은 가격이라도 갖고 싶은 강렬한 유혹에 사로잡혀 꽤 많은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략이 통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기술력과 특성이 월등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며, 따라서 주로 IT기기나 가전제품 등 성능이 주요 쟁점으로 꼽히는 제품에서 스키밍 전략이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현준 씨처럼 충성 고객이 있을 만큼의 브랜드라면 아무리 비싼 가격이라도 살 사람은 사기 마련이니까요.

반면 제품의 첫 출시 당시에는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가 서서히 그 값을 높이는 전략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가라는 매력으로 소비자를 이끌고, 시장점유율이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면 가격을 교묘하게 인상하는 전략이죠.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제품을 자주 구매했던 소비자는 어느 순간 달라진 가격표를 인지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맙니다.

이상하게 더 저렴하게 느껴지는 가격표의 비밀

2009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케니스 매닝과 데이비드 스프로트 교수는 제품가격에 들어간 숫자가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연구팀은 실험자를 대상으로 조건이 거의 같은 두 제품을 각각 4,900원, 3,000원에 판매했는데요. 실험자는 더 저렴한 3,000원의 제품이 아닌, 4,900원의 제품을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 또 비슷한 제품을 각각 6,100원, 5,900원, 5,400원으로 가격을 책정해 판매하자, 5,900원의 제품이 가장 많이 판매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죠. 이 실험으로 끝자리에 변화를 주어 왼쪽 자릿수가 변하면 사람들은 실제 변화폭보다 그 차이를 더 크게 인식한다는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이처럼 마트나 백화점의 가격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990, 9,900원 등 뒷자리의 숫자로 단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제품이 저렴하다는 인식을 줘 구매욕을 부추기는 일종의 심리 전략입니다. 고가의 브랜드 제품이 20만원대로 가격을 대폭 내렸다고 해 가보면, 30만원이나 다름없는 299,900원일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죠. 실질적으로 할인율이 그리 높지 않지만 소비자는 단수가격의 단면만을 바라보고 ‘싸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Good-Better-Best, 취향 따라 가격도 고른다

소비자는 자신의 여건과 상황에 따라 구매 선택을 달리합니다. 기업은 이러한 소비자를 위해 제품의 기능과 조건을 가감하여 몇 가지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일명 ‘프리미엄’으로 가격과 질 모두 높은 제품, 혹은 가격과 질 모두 보통 수준인 제품, 또 가격도 낮고 질도 조금 떨어지는 제품 등 세 가지 이상의 지표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비교되는 선택지를 바라보며 소비자는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돈을 조금만 더 내면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얻을 수 있는데’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건강한 소비 습관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한 소비는 이내 또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죠. 돈은 물론 쓰라고 존재하는 것이지만, 계획 없이 아무 때나 쓰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두 번 적정선의 기분 전환을 위한 소비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매사 모든 감정을 소비로 다스리려는 것은 결국 낭비와 쇼핑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인 셈이죠.

시시때때로 구매 충동에 불을 지피는 가격전략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의 확고한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지출 가능한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살핀 후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들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이 아니라면 멋이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쇼핑을 나서기 전, 내게 필요한 제품에 대한 필수 체크 리스트를 마련해두는 건 어떨까요? 합리적인 소비는 한 번 더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