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비철학

아껴야 잘 산다? 전 반대입니다만

김대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 저자>

나는 상당한 욕심쟁이다. 내 욕심은 분야를 막론하고 내 삶의 모든 곳에 침투되어 있다. 능력에 비해 일 욕심이 많은 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이고, 수입에 비해 물욕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요즘 들어서는 “저는 욕심쟁이입니다”라고 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지만, 한때 욕심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이 싫어서 오랜 시간 동안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어둡고 침침한 마음의 골방으로 들어가 ‘무욕의 갑옷’을 만들어 입었고, 내 몸에 맞지도 않은 무거운 갑옷에 짓눌린 채 버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김대일 작가의

한 줄 소비철학

생활자와 여행자 사이 그 어디쯤

나만의 소비철학을 갖기까지

다행이도 지금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나를 속박했던 ‘무욕의 갑옷’을 벗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의 수많은 대화 덕분이다. 그 대화를 통해서 욕심이라는 것을 똑바로 마주 할 수 있었고, 욕심을 품은 마음을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또한 나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억눌러 왔던 욕심을 펼쳐보니 대부분 소비와 직결되어 있었다.

‘나는 욕심쟁이로소이다’라고 인정했다고 해서 곧장 욕심을 부리기에는 소소한 장벽들이 꽤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속에 각인된 “아껴야 잘 산다”라는 가르침이 주는 죄책감은 소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하지만 소비와 연관되어 있는 장벽들은 철거작업이 시작이 되기만 한다면 쉽게 허물어지는 것 같다. 마치 모래성처럼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내 인생의 본격적인 소비활동들은 주머니 사정에 비해 다소 과격한 것들이었다. 그 과격함을 가족이나 몇몇 친구들은 걱정스럽게 바라보곤 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펑펑 쓰고 다니긴 했었다. 입이 닳도록 검소함을 외쳤던 누군가의 가르침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한창 소비에 열을 올리던 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소비를 통한 여러 가지 경험들은 '무욕의 갑옷'을 입고 있던 때 보다 훨씬 더 스스로를 성장시켰다. 이 성장은 직업적으로도 연결되어서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득으로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추천 하나. 분주함 대신 따분한 여행

누군가 나에게 ‘당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소비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여행이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비해서 여행 경험이 그다지 풍부한 편은 아니다. 몇 안 되는 경험이긴 해도 그 뒤에는 늘 많은 변화가 따라왔었다. 그 변화를 준 여행을 돌이켜 보니 체류기간이 최소 2주에서 최대 한 달인 여행이 대부분이다. 덧붙여 스마트폰 사용을 거의 하지 않은 여행들이었고, 관광의 느낌보다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여행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따분함이 필요해서 따분함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라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도시 생활자들의 대부분은 분주하고 분주하며 분주하다. 분주함의 기본 세팅 값이 지나치게 높다. 한 발짝 떨어져 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금세 부러질 것만 같다. 나 자신도 그랬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똑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분주했다. 이 분주함이 습관으로 남아서 그런지, 여행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을 수없이 보았다. 오랜만의 여행이니 뽕을 뽑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임하는 것 같았다. 흡사 패키지 상품과도 같은 여행처럼 말이다.

일상에서도 분주한데 여행에서만큼은 따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아무리 성능이 좋은 자동차라 할지라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면 고장 나기 십상이다. 중간 중간에 한 번씩 휴게소를 들려줘야 하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분주하게 달렸다면 따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추천 둘. 분수에 넘쳤던 중고차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이때 아내와 나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막 시작했었고, 둘의 수입을 합쳐 한 달 생활비를 겨우 벌었던 시기였다. 월세와 각종 공과금, 식비, 통신비를 제외하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의식주와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 무언가를 구입한다는 것은 사치라 여기기에 충분했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욕의 갑옷'을 막 벗어버린 탓인지 소비를 향한 들끓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했고, 결국 자동차를 구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겨우 90만 원 밖에 하지 않는 자동차였지만 당시의 우리에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사치와 로망이 버무려진 폐차 직전의 오래된 자동차는 아내와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생활 반경이 좁았던 우리에게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집에서 일을 하거나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던 우리는 시간과 목적지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와 함께 생활 반경이 넓어짐과 동시에 사고(思考)도 확장되었다. 이건 마치 여행을 통해 견문이 넓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고, 그것이 우리의 생활과 일에 서서히 묻어났다. 답답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아주 잠깐의 휴식만으로도 환기(喚起)가 되지 않던가. 사실 '드라이브' 만으로도 분수에 넘쳤던 90만 원짜리 자동차는 자기 몫을 다했었다.

추천 셋. 나에게 꼭 맞는 물건을 알아차리는 기술

나는 근본적으로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내 눈에 들어온 물건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통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그렇게 사들인 것들은 대부분 서랍 깊은 곳 어딘가에 있거나, 어디에 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작년 봄이었던가. 이삿짐을 꾸리면서 합리화의 산물들을 한 곳에 모아 봤었다. 정말 놀랐다. 쓸모없는 물건들이 이렇게나 많은 줄이야. 어딘지 모르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돈 그리고 여러 가지 노력들이 더해져서 내 손에 들어온 물건들인데, 빛도 보지 못한 채 집안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고 생각하니 허무했다. 이삿짐을 싸다 말고 그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지금이라면 이건 사지 않았을 텐데”하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이 날 이후로 소비의 습관이 180도로 확 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서랍 속에 처박힐 것들은 사지 않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의 약정이 만료된 시점이 돌아왔어도, 평소와는 다르게 최신형 휴대폰으로 바꾸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신형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나 성능에 비해 정작 내가 스마트폰으로 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최신형 스마트폰은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물건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물욕이 많은 이가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지 않았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사건이다. 만일 불필요한 소비를 통해 아까움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최신형을 고집하고, 집안 구석 어딘가에 물건들이 쌓여가고 있었을 것이다. 어설픈 연애를 경험할수록 연애의 기술이 늘어나는 것처럼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소비와 후회를 반복하다 보면 나에게 알맞은 소비의 기술이 생기지 않을까.

김대일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아내와 그림책 ‘바게트호텔’, 에세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 등의 다양한 작업들을 해왔다. 남해에서 평화로운 아침을 누리고,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작은 시골집에서 작업을 하는 삶을 살다가 현재는 부산으로 돌아와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잔잔한 일상의 순간들을 그림과 글로 담으며,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들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