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비철학

소소한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

김홍덕 <감성 살림꾼, 시월의 담 살림북 저자>

이따금씩 마음이 따끔거렸다. 확신 없는 소비가 불러일으킨 죄책감이었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소비, 소비를 위한 소비는 나를 더욱 공허하고 궁핍하게 만들었다. 이야깃거리 하나 품지 못한 물건이 늘어갈수록, 물건을 더 많이 소유할수록 나는 고립되어갔다.

김홍덕 작가의

한 줄 소비철학

소소하지만, 일상을 빛나게 하는 소비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돈, 시간, 품을 소비한 뒤 '진짜 행복, 진짜 만족'을 얻는 일은 중요하다. '행복, 만족'이란 녀석은 퍽 개인적이라 개개인의 취향,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른 것이었고, 행복이나 만족이 진짜 감정이 아닐 때면 '죄책감'이라는 감정 소비에 시달렸다.

이를테면 나는 익숙함을 취향으로 착각할 때가 많았고 그로 인한 소비는 나를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타인의 취향을 선망하며 구입한 물건들은 대부분 나를 초라하게 했으며 소비 후에도 소비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가려볼 줄 아는 눈과 소비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영감을 얻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소비와 잇대어 사유하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나는 단추 두어 개가 대롱대롱 달린 적당히 낡은 파자마를 입고 적당히
헤진 슬리퍼를 신은 채 보내는 일상을 아낀다. 소소하지만 자연스럽게
일상을 빛나게 하는 소비를 '행복하다' 여긴다.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믿는 나는 내게 가치 있는 소비가 나를 조금 더 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추천 하나. 집 밥이 주는 위안

때때로 집 밥이 눈물 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여행 중 삼시 세끼 맛있는 음식만 먹으러 다니기에도 모자랐던 어느 날, 결국 맛집 대신 '집 밥 같은 백반집'을 찾아 헤맨 사람들은 우리 가족뿐이었을까. 여행 내내 어딘가 불편했던 속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은 쌀밥, 달걀 프라이 세 개, 김치 몇 조각이 전부인 검박한 식탁 앞에서 보란 듯이 나았다. 며칠 만에 '진짜 밥'을 먹는 것 같았다. 집 밥이 주는 위안을, 이 안도감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힘들었던 날일수록 나는 부엌에 더 오래 머물렀다. 공들여 완성한 요리가 끝나면 그대로 식탁에 옮겨 대충 차려내기보다는 그릇장으로 가 그릇을 고른다. 재료, 시간, 품을 소비하여 나에게 길들여진 살림살이를 이용해 밥을 짓고 정성껏 그릇에 담아내면 마음이 깃드는 것 같아서다.

때문에 나는 그릇 구경, 부엌살림 구경하는 날엔 아이가 된다. 실컷 구경을 한 뒤엔 물기 마를 날 없이 쓰임 받기 좋은 몇 점만 담아온다. 이렇게 공들여 고른 살림살이 하나하나에는 그날의 냄새, 날씨, 감정, 이야기가 담긴다.

아끼는 그릇을 골라 조심스레 손끝을 모은 채 음식을 담고,
식기의 가장자리를 깨끗한 행주로 한 번 더 닦아낸 뒤 식탁에 올리고,
얼룩 없는 수저를 골라 식탁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수고를 기꺼이
더한다. 일상적인 집 밥이라도 하루 세 번만큼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추천 둘. 내가 머무는 공간을 돌보는 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으로 의자를 구입한다고 한다. 덴마크의 겨울은 유난히 어둡고 춥고 길다. 그러니 오랜 시간 머물기 좋은 공간으로 가꿀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나에겐 나를 가꾸는 일처럼 내가 머무는 공간을 돌보는 일도 행복이다. 집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이고 부단한 손길과, 눈길, 마음, 시간, 추억, 경험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 머물기 좋은 곳이 되도록, 안온한 일상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소비한다.

집을 위한 소비는 큰돈을 들여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공간을 만드는 것과 다르다. 내 경우엔 타인의 취향으로 인한 소비, 영감을 얻지 못하는 물건, 특별한 이야기가 머물지 않는 소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밑천을 드러내곤 했다. 쓰임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엔 버려지는 경험을 몇 차례 한 뒤에야 소비의 기준이 달라졌다.

나는 지금 당장 유행하는 것보다는 10년, 20년 후에도 틀림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소비하고 싶다. 쉽게 버려질 물건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너무 쓸쓸하니까. 가능한 본질에 충실한, 잘 만들어진 물건을 오래
고민한 뒤 들인다. 공간에 공해를 일으키는 디자인은 아닌지,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물건인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게 공들인
물건은 곁에 두고 오래오래 맘껏 사용하는 것으로 의리를 지킨다.
그러면 물건과 공간은 온몸으로 내 것이 되어준다.

추천 셋. 나만 아는 내밀한 행복들

곁을 스치는 작은 순간을 아낀다.

해가 닿으면 팔랑대며 돌아가는 복사계,
날씨를 알려주는 스톰 글라스,
햇볕을 잘게 부수어 흩뿌려주는 선캐쳐,
바람이 열심히 후후 불어대는 모빌.

너무나 일상적이고 소소하지만 일상을 빛나게 한다.

향기가 필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차를 준비하고 무사히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어떤 날을 위하여 맛있는 커피를 구입한다. 늦은 밤 값비싼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들고 비질을 하며 품을 소비하는 것에 행복해하고 스마트폰 메모장 대신 까맣고 낡은 스케줄러에 해야 할 일을 끄적대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어떤 것에 행복해하는 사람인지 아는 것은 가치 소비를 가능하게 했고 그러한 소비는 다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멋진 선순환이었다.

시월의 담 [살림북]

김홍덕 작가는?

하루 방문객 2만 명, 누적 방문자 수 1,200만 명. 네이버 블로그 살림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블로그 ‘시월의 담’ 운영자이다. 대한민국 주부들이 그녀의 블로그를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진짜 평범한 주부의, 진짜 아이를 둔 엄마의 소소하지만 일상을 빛나게 만드는 살림 솜씨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만의 감성과 따라 해보고 싶은 취향이 가득하다는 점도 한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