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덕질
골라 먹는 재미 ‘쏠쏠’
맥주도 취미가 됩니다
연말연시, 반가운 사람들과 마주하는 모임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죠. 바로 술인데요. 그 중에서도 맥주는 톡 쏘는 청량감과 낮은 알코올 도수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술 중 하나입니다. 종류도 가지각색이라 골라 먹는 재미도 있죠. 소비자시대 1월호에서는 이런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버린 이재호 덕후님을 만나 맥주가 지닌 매력에 대해 알아봅니다.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마십니다, 맥주」라는 책을 쓴 이재호라고 합니다. 닉네임 ‘지프리’라는 이름으로 네이버 블로그 <지프리의 맥주일주>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맥주, 새로운 여행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마십니다, 맥주」라는 책을 출간하며
자타공인 ‘맥주덕후’임을 전국 각지에 알리셨습니다.
맥주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학시절 동아리 친구들과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다양한 종류의 술을 접하던 중, 한 선배가 데려간 세계맥주 전문점에서 밀맥주인 ‘에델바이스’를 마시면서 맥주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당시 국내 맥주와는 차별화되는 풍부한 향과 부드러운 바디감을 가진 밀맥주의 맛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요. 이후 다양한 수입맥주들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복무를 할 때도 휴가 때마다 맥주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어요. 제대 후에는 맥주를 소재로 여러 정보를 전하고자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맥주를 한 번씩 맛보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파는 수입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네요. 처음에는 독특한 맥주 맛을 블로그에 표현하고 기록했는데, 이후 맥주에 관한 책들을 접하면서 맥주가 지닌 다양한 매력에 점점 더 빠지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고, 책을 출간하는 등 다방면으로 취미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른 술과 비교할 때) 맥주만이 지닌 매력,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맥주에 대해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와인 등 다른 주류에 비해 ‘다양성’이 풍부하다는 점입니다. 똑같은 차를 마시더라도 영국과 중동, 동아시아 국가들이 저마다 차를 즐기는 방법이 다르듯이 맥주 역시 국가마다 종류와 즐기는 법이 다양합니다. 이렇게 맥주에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는 것은 맥주를 보리맥아, 홉, 효모로 만들지만 각각의 종류를 배합하는 방식이 무궁무진하고 여기에 더 나아가 독특한 가공법이나 첨가물을 넣은 맥주도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맥주의 다양성을 더욱 높여주는 흐름에는 크래프트 맥주 문화도 한 몫 합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수제맥주’라고 부르는 녀석인데요. 크래프트 맥주는 보다 다양한 맥주를 즐길 권리를 주장하며 197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소비자 운동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독과점기업들이 생산하는 천편일률적인 라거 맥주에 반기를 들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맥주 스타일을 다시 복원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맛의 맥주를 만들어나갔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짚어나가며 맥주를 즐기다 보면 단순한 술이 아니라 그 맥주가 생산된 지역의 역사와 문화, 또는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경우 양조사의 철학을 담은 예술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물론 모든 술들이 그러한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맥주는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다양성의 폭이 넓고, 지금도 새로운 스타일들이 창안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맥주를 드셔보셨나요?
2013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맥주 시음을 시작한 이래 새로운 맥주를 마시면 꼭 시음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2022년 8월에 1,000번째 맥주리뷰를 블로그에 업로드 했고, 12월 말 기준으로 1,070여 종의 맥주 시음기가 블로그에 업로드 되어 있습니다. 햇수로는 꼭 10년을 채웠으니 1년에 100여 종 정도는 꾸준히 마신 셈이죠.
주기적으로 맥주 시음을 하다 보니 맥주를 남들보다는 자주 마시게 됩니다. 1달 중 10일 정도는 맥주를 마시는 편입니다. 맥주 시음기를 업로드하기 위해 1주일에 2번 정도 맥주 시음을 하는데요. 이렇게 시음을 할 때에는 가급적 맛을 잘 구분하기 위해 하루에 한두 종류만 시음하고 있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맥주를 마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평소 가고 싶었던 수제맥주 펍을 가기도 하고 평범한 동네 호프집을 가기도 합니다.
맥주도 종류가 여럿 있다고 들었습니다.
독자들께 짧고 간단하게 설명해주신다면요?
맥주의 종류(스타일)를 크게 하면발효맥주(라거)와 상면발효맥주(에일)로 구분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제조 공정상의 분류일 뿐 이미 존재하는 세계 각국 고유의 맥주 스타일들과 매년 새로 출품되는 맥주 스타일들로 인해 실제로 수입맥주 전문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맥주는 훨씬 다양합니다. 어디까지 맥주 스타일로 인정하느냐의 기준은 분명치 않지만, 대체적으로 전 세계 맥주의 스타일 수는 적게는 80여 종에서 많게는 120여 종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모든 스타일들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라거와 에일의 대분류 안에서 맥주 색상이나 맛을 기준으로 주요 스타일들을 간단하게 알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가령 라거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마시는 황금빛 페일 라거, 구릿빛 앰버 라거, 그리고 검은색 다크 라거로 크게 나누고 유래한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하위 스타일들이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일은 오늘날 수제맥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IPA를 포함한 페일에일 계열의 맥주가 다양한 맛과 풍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영국의 흑맥주인 포터나 스타우트, 독일,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밀맥주들도 에일에 속합니다.
맥주라기엔 너무나 특이한 풍미를 가진 스타일들도 여럿 있는데요.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자면 최근 유행하는 사워(sour) 에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신맛 나는 에일’을 뜻하는 이 맥주들은 람빅이라 불리는 벨기에의 전통 맥주에서 유래했는데 일반적인 맥주 효모 대신 유산균이나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야생 효모를 이용하여 만들어집니다. 과일 느낌의 산뜻하고 새콤한 맛이 나는 맥주부터 익은 김치에서 날 법한 유산균 냄새, 더 나아가서는 퀴퀴한 가죽 냄새를 풍기는 맥주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스타일을 취급하는 craftbeer.com애서는 맥주의 종류를 15개 그룹 80종의 스타일로 구분하는 반면, 미국의 크래프트맥주 심사 인증기관 중 하나인 BJCP의 가이드라인에서는 맥주의 종류를 34개 그룹 123종류로 구분함
작가님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와 그 이유는?
저는 ‘맛있는 맥주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제가 마셔본 맥주들이 어떤 스타일이건 하나하나 장점을 찾고 추천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시기를 불문하고 제가 가장 후한 점수를 줬던 맥주는 시트러스의 상큼한 향과 잔디풀 느낌의 상쾌한 아로마가 잘 나타나는 맥주들입니다. 잘 가꿔진 잔디밭을 걸으며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마시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고나 할까요. 이 기준을 가장 잘 만족했던 맥주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이들 중 브루클린 라거와 슈나이더 호펜바이세는 발품을 팔면 국내에서 구할 수 있지만, 맨드릴 페일 에일은 제가 5년 전 해외여행 중 접한 이후 아직 국내에서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수입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결국 맥주 공방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비슷한 맛을 재현한 클론 맥주를 만들기도 했는데,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양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맛있게 나누어 마신 기억이 새롭습니다.
맥주,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면요?
작가님만 알고 계신 비법 좀 전수해주세요.
맥주를 마시기 전에 그 맥주에 대한 간단한 조사를 하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우선 맥주의 성분표를 보고 기본 재료 외에 추가된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그리고 맥주의 이름을 검색해서 이 맥주가 속한 스타일과 이 맥주를 만든 브루어리에 대한 정보를 얻고, 때로는 먼저 이 맥주를 마셔 본 사람들의 시음기를 찾아보면서 앞으로 마실 맥주에서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날 마시면 더 맛있는 맥주와 안주
추천 부탁드립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찬 공기가 많이 내려와서 그런지 쌀쌀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런 겨울날에 몸을 데워주는 용도로 쓰이는 맥주들이 있습니다. 몸을 데워주는 윈터 워머(winter warmer)로 불리는 녀석들인데요. 당연하지만 도수가 높은 맥주들이 이에 속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윈터 워머가 있는데 바로 벨기에의 다크 스트롱 에일입니다. 쿼드루펠(quadrupel)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맥주는 10도 초반의 도수에 진한 흑설탕과 초콜릿, 건포도 등이 뒤섞인 강한 몰트 그리고 꿀에 절인 배를 떠올리게 하는 향과 스파이시한 효모 아로마 등이 입 안을 가득 채우면서 몸을 데워줍니다.
쿼드루펠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벨기에 라 트라페(La Trappe)의 쿼드루펠이 가장 유명하지만, 세인트 버나두스(St. Bernardus)의 Abt12, 로슈포르 10(Rochefort 10)을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이들 맥주 모두 11도~12도 가량의 도수를 가지고 있는데요.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은 게 싫으시다면 로슈포르 8 또는 시메이 블루(Chimay Blue)가 다크 스트롱 에일 중에서는 도수가 비교적 낮은 편(9도 초반)이라 상대적으로 편하게 마실 수 있습니다.
벨기에 다크 스트롱 에일은 풍부한 아로마를 즐기기 위해 일반 라거 맥주보다 상대적으로 덜 시원한 온도인 섭씨 10~12도 사이의 온도에서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무래도 도수가 높고 약간 스모키한 풍미가 있다 보니 훈제 고기요리나 스모크 치즈와 즐기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내년에 꼭 맛보고 싶은 맥주가 있다면?
1,000여 종의 맥주를 마셔오는 과정에서 저 역시 대부분의 맥주 매니아들이 그러했듯 미국, 독일, 벨기에, 영국 등에서 생산된 수입맥주들 위주로 시음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기존의 맥주 강국인 서유럽과 미국 외 지역에서도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생겨나고 있는데요. 실제로 최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에서 생산되는 수제맥주를 마셔봤는데 독특한 레시피로 자기들만의 영역을 개척한 맥주들이 여럿 보여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새해에도 맥주 시음은 계속할 생각이지만, 특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의 수제맥주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서 마셔보려고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맥주에 대한 견문을 넓힌다는 차원에서는 이 또한 가치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새해 다짐과 목표 한 말씀.
그동안 공방에서 맥주를 만들며 또 다른 재미를 느껴왔는데요. 최근 넓은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새해에는 맥주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맥주를 직접 만드는 홈브루잉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즐기고 있는데, 맥주를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맥주에 대한 이해도 더 넓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맥주를 마시는 취미는 저 혼자 조용히 즐기는 취미에 가까웠지만, 언젠가 홈브루잉에 익숙해지게 되어 나만의 레시피를 가지고 직접 만든 맥주로 저희 집을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날이 오길 꿈꿔 봅니다.
대학 시절부터 새로운 맥주를 발견하면 주저 없이 집어 드는 맥주 애호가로 블로그 <지프리의 맥주일주>를 통해 맥주 스타일과 테이스팅, 역사 등 맥주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맥주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맥주 앞에서 설렌다. 맛있는 맥주를 알려달라는 친구와 동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맥주에 얽힌 저마다의 사연을 이해하면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 오늘도 새로운 맥주를 찾고 마시고 쓰고 있다.
주요 저서오늘도 마십니다,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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