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비철학

취미가 직업이 되기까지

김지혜 <푸드 스타일리스트, 퇴근 후 한 잔 저자>

용돈을 직접 벌기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 가깝게 돈을 벌고 있다. 대학시절에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고, 월급을 받으면 며칠 만에 돈을 다 써버렸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첫 직장에서 4년을 일했음에도 퇴사 무렵 잔고는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저 유행하는 옷을 사 입고, 남들이 좋다는 화장품을 따라 샀다. 당시엔 소비만으로도 행복했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스스로에 대한 이해 없이 소비를 한 셈이다.

김지혜 작가의

한 줄 소비철학

나를 정확히 알고 소비하면 후회하지 않아

나만의 소비철학을 갖기까지

첫 직장을 퇴사한 후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했고, 연봉 역시 많이 올랐다. 이제 돈이 모이겠지 했지만 무계획적인 소비로 인해 통장 잔고는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힘들게 출근하고 번 돈으로 왜 만족스럽지도 않은 쇼핑만 하고 있나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후 업무 외의 자유 시간을 최대한 나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으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찾아갔고,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참 신기하게도 단순히 쇼핑을 할 때보다 나에게 맞는 경험을 할 때 더 깊은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누린 경험을 블로그에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소비 패턴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을 잘 담기 위해 카메라를 샀고, 밖에서 겪은 행복의 순간을 집에서도 느끼고 싶어 예쁜 그릇과 소품을 샀다. 지금 나는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나를 채우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결국 나의 직업이 되었다.

추천 하나. 취미를 직업으로 이어준 카메라

십여 년 전, 나와 블로그 활동을 함께 했던 카메라는 보급형 DSLR이었다. 지금은 카메라가 보편화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카메라에 100만원 넘게 투자하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한 달 월급만큼의 카메라와 렌즈를 구입했고, 그 카메라와 5년을 동고동락하며 블로그를 꾸려갔다.

그렇게 자동차로 치면 20만km는 탔을 무렵, 새 카메라로 바꿀 시기가 왔다. 첫 카메라를 사던 시절에 비하면 돈이 많이 모였음에도 선뜻 새 카메라를 구매하기는 어려웠다. 전문가용 카메라로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일반 회사원인 내가 그 카메라를 아깝지 않게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몇 달은 계속되었다.

결국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장비발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600만원이 넘는 카메라와 렌즈를 구입했다. 물론 그 결정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새 카메라와 함께 만들어 낸 결과물들은 결국 회사 이후의 나를 있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오랜 소비생활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카메라를 업그레이드 하는 등 취미에 아낌없이 투자를 했고, 그것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유튜버로 활동하게 되면서 영상에 최적화된 카메라도 구입해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추천 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여행

누군가에게 여행은 휴양지 선베드에서 시원한 맥주를 먹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여행이란 누군가의 일상적인 공간을 걷고 먹으며 즐기는 것, 그리고 그 곳에서의 쇼핑이다. 언제나 쇼핑이 가능한 도시를 여행지 후보로 선택하는 이유다.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 특성상 현지의 그릇과 식품은 빼놓지 않고 구경하는 편이다. 이 일을 하기 전부터 그릇 쇼핑을 좋아했던 나는 여행지에서 꼭 그릇을 구입한다. 때로는 현지 빈티지시장까지 찾아갈 정도다. 또한 그 나라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품이 가득한 슈퍼마켓 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현지에서 직접 재료를 구입해 이국의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재료를 구입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사실 이런 활동이 재미있다고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화려한 풀빌라 리조트로 여행을 다녀온 후 깨달았다. 내가 도시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는 것을. 즐거웠던 여행지를 떠올려 보면 언제나 도시였고, 그 기억 중심에는 현지에서 마트와 그릇 쇼핑을 즐기던 내가 있었다. 이제는 웬만해선 도시로 휴가를 떠나려고 한다. 누워서 쉬는 여행도 좋지만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쇼핑을 하는 게 제일 즐거우니 말이다.

추천 셋. 돈을 아끼지 않는 음식

일상생활 중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음식이다. 한 끼를 먹어도 좋아하는 식재료로 조리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제철 식재료와 좋아하는 식재료를 늘 냉장고에 준비해놓는다. 특히 빵과 치즈는 떨어지지 않게 신경 쓰는데, 더 맛있는 빵과 치즈에 대한 탐닉은 계속 되고 있다. 물론 치즈 가격이 싼 편은 아니라 구입할 때 고민될 때도 많다. 하지만 맛있는 치즈를 발견해 요리하는 기쁨이 크기에 가격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또한 돈 대신 빵을 모은다고 농담할 정도로 맛있는 빵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음식에 대한 투자는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가격으로 스스로를 대접하는 방법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패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대신 좋은 식재료와 맛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설픈 외식을 자주 하기보다 제대로 된 맛집에서 한 끼를 먹는 것이 좋다. 예전에는 기다려서 음식을 먹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갔지만, 요즘은 기다려서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고 한다. 나의 시간과 돈에 대해 후회가 없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점점 음식에 대한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다. 좋은 음식 그리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소비야말로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시월의 담 [살림북]

김지혜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디지털마케터로 일했다. 현재는 독립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프리랜서 푸드스타일리스트이자 유튜버 ‘마지’로 활동 중이다. 기업 및 다양한 잡지사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레시피 개발, 컨텐츠 제작 등을 진행 중이다. 유튜브와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를 통해 레시피뿐만 아니라 맛있고 소소한 일상도 꾸준히 나눈다. 지은 책으로는 <퇴근 후 한 잔>, <친구의 식탁>, <하루 한 끼 도시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