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잔의 위스키,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무엇이든 ‘OK’라 외치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비록 남들에 비해 넉넉한 삶을
꾸리진 못해도, 날마다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으로 즐기는 소확행은 영화 <소공녀> 속 주인공인 ‘미소’를 어김없이 미소 짓게 하지요.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찰나의 행복도 잠시, 새해 아침이 밝아오자 갑자기 미소가 살던 집의 월세가 덜컥 올라버렸습니다. 미소의 하루 끝 즐거움이던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성큼 올랐고요. 가사 도우미로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미소의 일당은 고작 4만 5천 원 남짓. 미소는 올라버린 물가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어두컴컴하고 차디찬 방 안에서 계산기를 부단히 두드려 봅니다.

골똘히 수입과 지출 내역을 살펴보던 미소가 과감히 지워버리는 지출 항목은 다름 아닌 ‘집’ 입니다. ‘아니, 집 없이 어쩌려고?’ 싶은 순간, 미소는 주인집에 방을 빼겠다고 선언한 후 캐리어로 한가득 짐을 싼 채 거리로 나섭니다. 정처 없이 도심을 떠돌, 미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하루하루 미소의 손엔 여전히 담배가, 한 손엔 위스키 한 잔이 들려져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 짬을 내서 보는 애인과의 시간은 여전히 달콤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고요.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인생을 어떻게 바꿀까?

영화 <소공녀>에서는, 보통 사람과는 사뭇 다른 미소의 선택이 돋보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집과 담배, 술을 동위선상에 놓았을 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인 ‘집’을 가장 우선시하기 마련이니까요. 집을 택하고 나면, 평소 즐기던 위스키와 담배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물론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르다 쉽게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매번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두고, 무언가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것 중 가장 큰 가치를 일컫는 ‘기회비용’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미소가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함으로 인해 생겨난 기회비용은 바로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소는 ‘집’이라는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위스키’와 ‘담배’라는 가치를 선택하여 지출을 감행했습니다. 이렇게 이미 지출해 돌이킬 수 없는 가치를 ‘매몰비용’이라고 하는데요. 미소는 이미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써버린 돈은 어떤 방법으로든 돌이킬 수 없고, 미소는 그 돈을 지출함으로써 현재의 행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미소가 만약 앞으로 지출할 매몰비용인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한다면, 여전히 획득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기회비용인 ‘집’을 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소는 집이 없는 처지에 굴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좇으며, 자신만의 행복을 만끽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이가 이미 지나가 버린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을 두고, 오랫동안 저울질하며 아쉬워하곤 합니다. 무언가를 갖고 있어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이 어른거리기 때문이죠. 특히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은 집과 자동차 같은 경제적 가치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진학과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이 될 사건이 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무형의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은 더 큰 아쉬움을 남기곤 하죠.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여기서 <소공녀>의 미소를 떠올려 본다면, 무언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집 없다고 정처 없이 헤매도, ‘진짜’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괜찮아

경제적 가치가 최대의 행복으로 점쳐지는 세상, <소공녀>의 미소는 어쩌면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명 ‘N포 세대’의 소용돌이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소의 삶이 어쩌면 부럽게 느껴질 법도 합니다. 큰 욕심 없이, 사회의 잣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고 소소한 행복으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가는 모습을 보면서요.

거리를 떠돌게 된 미소는 대학 시절 함께 밴드로 활동했던 친구를 한 명 한 명 찾아가며 하룻밤씩 신세를 지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미소는 예상치 못했던 사랑과 우정을 맞닥뜨리기도, 상처와 이별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길 위에서든, 집 안에서든, 사람이라면 늘 겪을 수밖에 없는 생의 굴레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말이죠.

올 한 해의 시작, 혹독한 추위는 이불로 꽁꽁 싸매두고 <소공녀>의 미소를 한 번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미소가 포기로 얻어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과 선물을 바라보며, 올 한해 나의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을 점쳐보는 거예요. 소공녀가 쌓아올려 나간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새해를 맞아 꼭 발견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