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소비심리의 비밀

울적한 날, 지갑을 꺼내는 이유

오늘 영주 씨의 기분은 영 꽝입니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는 말처럼 일상 온갖 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회사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고, 애인과도 다퉜고, 승진 시험에서도 미끄러졌습니다. 무력감과 우울함이 몰려오던 도중, 무언가 사고 싶다는 충동과 함께 무심코 집 근처 액세서리 가게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계획에도 없던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까지 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지난 달 영주 씨의 카드값은 월초에 세웠던 지출 계획과는 많이 어긋나 버렸고, 아마 이번 달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이럴 것이라 위안을 해봐도 텅 빈 통장의 잔액을 바라보면, 이내 허한 마음의 빈틈은 더 커져 버리고 맙니다.

우울한 마음은 지갑을 열게 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갑을 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프릴 레인 벤슨은 우리가 쇼핑을 하는 이유는 갖가지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스트레스나 상실감이 느껴질 때,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무언가 구매하려는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죠. 하지만 결국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쇼핑은 무분별한 소비 습관이 되고, 중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제니퍼 러너 교수는 기분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피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쪽에는 슬픈 영화를, 한 쪽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는데요. 영상 시청이 끝난 후 각 그룹의 피실험자에게 형광펜 세트를 판매한 결과, 슬픈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른 그룹보다 30% 더 많은 돈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죠. 러너 교수는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소비자일수록 자기인식이 떨어지고, 더 나은 기분을 위한 보상심리가 작용해 돈을 쓰기 쉽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정적 감정에서 비롯된 쇼핑, 중독되기 쉽다

실제로 쇼핑을 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도파민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신경전달 물질로, 분비가 되면 의욕과 흥미가 생기고 성취감을 더 잘 느끼게 됩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파킨슨병이나 우울증, 조현병 등이 발병할 수 있죠.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입니다.

도파민은 ‘중독’과도 큰 관련이 있는 물질인데요.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면 뇌세포와 중추신경계가 파괴돼 중독성을 일으킵니다. 만약 특정 행동을 통해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분비되어 만족감을 느낄 경우, 그 행동을 다시 반복하기 쉬워지는 것이죠. 특히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마약류 약물들은 모두 도파민의 작용에 따라 중독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쇼핑을 하여 심신의 안정을 얻는 것은 이내 쇼핑 중독으로까지 발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도파민의 분비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다시 허한 마음이 찾아들 무렵 도파민의 분비를 위해 또 무언가를 소비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스트레스 풀려 지출하는 홧김 비용, ‘홧김’이 아닌 습관 돼

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쇼핑으로 해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홧김비용’이라는 소비 신조어가 등장했는데요. 특히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직장인들의 소비 지출이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내 한 은행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0~50대 직장인 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5.5%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별도비용을 지출한다’고 응답했는데요. 이렇게 지출하는 비용은 월평균 20만원가량, 횟수는 2.4회에 달한다는 통계가 도출됐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건강한 소비 습관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한 소비는 이내 또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죠. 돈은 물론 쓰라고 존재하는 것이지만, 계획 없이 아무 때나 쓰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두 번 적정선의 기분 전환을 위한 소비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매사 모든 감정을 소비로 다스리려는 것은 결국 낭비와 쇼핑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인 셈이죠.

매일 아침 맑은 하늘만 맞이할 수 없듯,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흐린 날이 있으면 이내 볕이 좋은 날도 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늘 불완전하며, 그 무엇도 마음을 완전히 채울 순 없습니다. 소비 또한 부정적인 감정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죠. 성숙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감정의 만족을 모색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요. ‘나’를 위로하는 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요? 진정한 행복의 열쇠는 늘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