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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

글·사진최고요 <공간디렉터,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저자>

남의 집에 놀러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각자의 집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분위기를 발견하는 일이 즐거워요. 고등학교 시절 언제나 정갈하고 맛있는 도시락을 싸오는 짝꿍네 집에 처음 갔던 날, 몰딩이 들어간 아이보리색 가구들과 반들반들 윤이 나던 방바닥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입구부터 풍겨오던 깨끗한 냄새는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는 것만 같아요.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과 묘하게 겹쳐지는 다른 사람의 집. 그래서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 집에 온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방바닥을 닦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책장의 먼지를 청소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떤 집에 살고 싶으신가요?

강연이나 인테리어 상담을 하다보면 어떻게 하면 ‘근사한 집’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집을 멋지게 꾸미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한 마음이 든다고요. 종종 ‘멋진 집’이란 옷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유행하는 옷보다도, 남이 입었을 때 예쁜 옷보다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었을 때 가장 멋지잖아요. 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의 생활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곳,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크게 거슬리는 것이 없고 약간의 기분 좋음이 느껴지는 장소.

그러려면 집의 구석구석에 나만의 생활방식이 묻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활방식에는 자신의 고유한 기준과 취향이 녹아있겠죠. 하지만 공간 상담을 하다보면 자신의 취향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 가지 컨셉의 인테리어 이미지가 나열된 파일을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보라고 한 다음, 사진을 한데 모아보면 일관된 컨셉을 고르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애매모호하고 알 듯 말 듯 하지요.

내 취향에 맞는 집, 이렇게 만들어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알려면, 먼저 나의 취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물건, 나의 역사, 나의 습관과 생활의 관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해요. 이 때, 가장 쉽게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정리정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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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돈을 통해 취향을 걸러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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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들을 꺼내어 보세요. 옷, 주방용품, 거실용품, 잡동사니 등 한 카테고리 씩 정리를 원하는 물건을 꺼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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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찰 하세요. 나에게 어울리는지, 왜 샀는지, 어떻게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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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한 물건과 좋아하는 물건, 아끼는 것들을 구분지어 냅시다. 그리고 제외된 물건은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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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리고 남은 물건들로부터 시작하여, 아래의 방법으로 집을 변화시켜보세요. 내 취향의 집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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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기 그리고 간단하지만 확실한 것부터 변화주기

이제부터는 평소 좋아했던 장소를 떠올립니다. 없으면 지금부터 좋아하는 장소를 만듭니다. 동네 카페도 좋고, 따라하고 싶은 sns 인플루언서의 집도 좋아요. 내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그곳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 그런 곳이라면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그 집과 비슷한 무드의 변화를 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1패브릭

패브릭은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면서 바꾸는데 힘이 들지 않지요. 앞서 말한 정리 정돈의 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이불이나 커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장 먼저 변화를 줄 곳은 바로 패브릭입니다. 침구는 매일의 수면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촉감과 색감을 잘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합니다. 커튼도 마찬가지로 아주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오지만 부피가 크지 않고 교체가 쉽죠.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선 흰색, 베이지색, 회색 등의 쉬운 색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패브릭 고르는 Tip

촉감을 만져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매장에 가서 만져보고 살 것을 추천합니다. 침구의 경우 면20수 30수 이런 식으로 표기돼 있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조직이 곱고 부드럽습니다. 또, 커튼은 작은 면으로 본 것과 크게 본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가급적 실제 사이즈를 보고 고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2식물

식물은 집 내부에 사물이 줄 수 없는 활력을 불어 넣지요. 식물이 가진 초록은 자연스럽지만 튀지 않고 집을 편안하고 아늑한 곳으로 만들어 줍니다. 집 분위기가 애매할 때에는 메인이 되는 식물을 하나 정해서 들여놓습니다. 특별한 장식 없이도 공간이 꽉 찬 느낌이 듭니다.

식물 고르는 Tip

식물은 우리 집 분위기와 어울리는 식물, 화분을 충분히 고민하여 들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수형이 특이한 식물을 들여 하나의 오브제처럼 배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식물을 들이는 것 보다 하나씩 숫자를 늘려 키워보고 우리 집의 환경에 잘 맞는 식물에 대한 감을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3소가구&소품

메인 가구를 바꾸기에는 부담스럽고 집이 휑하고 완성되지 않은 느낌일 때에 소가구와 소품을 들입니다. 작은 티테이블, 안락의자, 선반이나 장식장 등 적재적소에 배치된 물건들은 집을 한결 개성 있게 보이도록 도와줍니다.

소가구&소품 고르는 Tip

집 전체의 느낌을 고려해서 잘 어울리는 물건들 위주로 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때, 잡지나 sns에서 보았던 물건들을 유심히 보아 두었다가 나에게 비슷한 물건이 있는지 고민 해봅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한다는 느낌으로 배치합니다. 아주 심플해도 좋고, 많은 물건이 진열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가족이 어떤 상태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는지’입니다.

너무 완벽하려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기를

호주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이십대 초반, 대부분 시내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과는 달리 저는 주택에 살고 싶었어요. 여태껏 살아온 집들과는 다른, 거실과 방에 타일이나 카펫이 깔려있고 건식 샤워시설이 있는 ‘현지식 집’에 살고 싶었던 거죠. 살짝 외곽 지역에 가격이 적당한, 오래되고 방이 많은 집을 렌트한 다음 쉐어생을 구해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들처럼 사는 것 보다 ‘내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때였어요.

발품을 팔아 예산에 맞는 가구와 생활용품을 사고 새로운 쉐어생이 들어올 때마다 집안의 구조를 바꾸거나 가구 배치를 변경했어요. 예산에 맞는 물건을 찾아 온갖 무빙세일을 다니며 남의 집 구경을 하고, 주말마다 다른 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 집을 보러 다니기도 했어요. 그렇게 약 2년을 살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할 때 즈음에야, 내 살림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대한 변화를 생각할 때 막막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한 번에 상상하는 집을 완성하려는 욕심 때문일 겁니다. 무슨 일이든 과정이 있지요. 자신의 취향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데 최초의 선택들로 꿈에 그리던 공간이 나타나기를 바랄 수는 없어요. 너무 완벽하려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봅니다. 청소부터, 정리부터, 좋아하는 어느 공간을 떠올리는 일부터. 쉬운 것들로 시작되는 변화가 결국 집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놓고 일상생활 속에서의 미학을 발견하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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