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하지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할 때, 음악의 힘을 빌려봐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던 한 남자. 그가 막연히 발걸음을 옮기다 닿은 곳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한 레스토랑입니다. 가게 직원은 ‘길 잃은 개’가 또 찾아왔다며 그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데요. 자연스럽게 피아노에 앞에 앉는 이 남자는, 살며시 흰 건반을 눌러봅니다. “또 짖기 시작하는군.” 사람들의 멸시에도 별 반응이 없던 그는, 갑자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쥐 죽은 듯 집중하여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죠. 침묵 속에 연주가 끝맺자, 이내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불현듯 나타나 연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이 남자의 정체는 바로, 세상에서 잊혔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입니다.

천재로 칭송받던 소년, 불운의 피아니스트로 남다

데이비드는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던 소년이었습니다. 아버지 피터는 과거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음악가의 꿈을 아들이 실현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펼치는데요. 아주 엄격하게 연주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자들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었죠. 표면적으로는 아들을 아주 완벽히 아끼고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어찌 보면 과연 사랑일까 싶습니다. 결국 데이비드는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호주의 음악 콩쿨에서 인정받으며 유학을 권유받습니다. 하지만 피터는 아들이 자신의 손을 떠나간다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죠.

인생 최초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며 유학길에 오른 데이비드는, 영국 왕립음악원에서도 ‘천재’라는 꼬리표를 달며 어디서나 칭송받습니다. 특히 작곡가 자신조차도 탄생시켜놓고 어려워 곤혹스러워했다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전설적인 무대를 남기며 유망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간 쉴 틈 없이 음악을 위해 삶을 오롯이 바쳤던 탓일까, 데이비드의 정신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 갑니다. 갖은 강박에 시달리며 진정제에 의존한 채 연주를 이어가던 데이비드는, 오케스트라 협연을 위한 오디션에 참가하여 연주하던 도중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맙니다. 결국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 데이비드는,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갔습니다.

나의 유일한 삶의 구원이자 행복, 피아노

그 후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던 데이비드는, 다시 운명처럼 피아노와 마주하게 됩니다. 연주에 대한 열망이 다시 싹트는 동안에도 그의 정신 분열 증세는 계속되었지만,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지지하는 한 여자 ‘길리언’을 만나 조금씩 나아지게 되죠. 데이비드는 길리언의 보살핌 아래, 피아니스트로 재기에 성공합니다. 다시 열정적인 연주를 뽐낼 수 있게 된 데이비드는 음악을 통해, 잊혔던 삶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린 항상 순간에 맞는 이유를 찾아야 해. 영원한 건 없으니까.” 그의 삶 매 순간순간의 이유는 다름 아닌, ‘피아노’였던 것이죠.

영화 <샤인>은 실존 인물,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 영화입니다. 실제로 데이비드는 하루에 125개비의 담배를 피우고,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 25잔을 마시며 카페인과 설탕에 취해 투약 치료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와중 데이비드는 운명처럼 길리언을 만났고, 그녀를 처음 마주한 순간 마치 벼락을 맞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달고 살던 커피 10억 잔보다, 그녀가 마냥 더 좋았다고요. 길리언은 당시 가진 것이 200달러와 라디오, 그리고 불안장애가 전부였던 데이비드의 청혼을 덜컥 승낙했습니다. 그녀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청혼을 승낙했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그 결정은 내 인생에서 무척 큰 축복이죠.”

그 후 길리언은 데이비드를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넓은 집을 빌리고, 데이비드가 피아노에 전념할 환경을 조성해주었습니다. 그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치유할 수 있도록 있는 힘껏 도왔고, 그가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일깨워주면서 미처 자라지 못한 영혼이 성숙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주었죠. 그녀로 인해 차츰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데이비드는 다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길리언과 함께 세계를 누비며 세상에 감동적인 연주를 전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콘서트가 없으면 나는 끝이에요.
나는 행복하고 싶어요. 행복하기 위해서는 피아노를 계속 연주해야 해요.

조금 더 살만한 용기를 선사하는 선물, 음악

데이비드 헬프갓이 그랬듯, 무대를 자신만의 연주로 물들이며 세상을 빛내는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서일 수도, 그저 좋아서일 수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그 무대를 감상하다 보면, 조금 더 살만한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이번 주말, 완연한 봄이 찾아오길 고대하며 아직 채 녹지 못한 심신을 데워줄 무대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분명, 어딘가에 오랫동안 묵혀뒀던 진심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01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의 <El Dia Que Me Quieras>

2020년 3월 1일부터 유튜브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시려면 브라우저를 업데이트(크롬, 엣지, 파이어폭스 등)하세요.

아르헨티나의 전통 악기이자, 탱고의 꽃인 ‘반도네온’. 국내 몇 안되는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는 우연히 어머니께서 사다 주신 반도네온을 처음 만난 후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지요.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당시 재학 중이던 카이스트를 그만두고 반도네오니스트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그녀가 영상에서 연주한 곡은 탱고에 큰 영향을 끼친 아르헨티나의 가수, 카를로스 카르델이 작곡한 노래인데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날’이라는 뜻의 제목에 걸맞게, 아주 달콤한 노랫말을 자랑하는 곡이랍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밤, 하늘의 푸르른 곳에서 질투에 쌓인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겠지요.” 반도네온의 매력과 어우러진 이 곡은, 유난히 낭만이 더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02피아니스트 ‘조성진’의 <Claire de l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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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는 한국 클래식 음악에 큰 획을 그으며,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영상에서 연주한 곡은 드뷔시의 <Claire de lune>로,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가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역을 여행하면서 받은 느낌을 담아 작곡한 노래 중 하나인데요. ‘달빛’이라는 뜻에 걸맞게 잔잔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담아, 인상주의 음악 중 가장 사랑받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영상의 댓글에, 이런 말이 눈에 띄네요.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고, 피아노가 어여뻐서 쓰다듬는 것 같아요.”

03트럼펫터 ‘쳇 베이커(Chet Baker)’의 <Time After Time>

2020년 3월 1일부터 유튜브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시려면 브라우저를 업데이트(크롬, 엣지, 파이어폭스 등)하세요.

미국의 재즈 트럼펫터이자 가수였던 쳇 베이커는, 천사 같은 연주와 악마 같은 행보의 대조로 유명세를 떨치는 음악가입니다. 낭만적인 감정선과 아름다운 미성을 드러내는 무대에서의 사랑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쳇 베이커의 일상은 늘 악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쳇 베이커는 괴한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트럼펫터에게 가장 중요한 치아의 일부를 잃고 맙니다.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쳇 베이커는 한동안 잡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트럼펫에 대한 열망은 도저히 접을 수가 않았죠. 그는 틀니를 맞추고 오랜 연습을 거듭한 끝에, 다시 연주를 재개할 수 있게 됩니다. 쳇 베이커는 죽을 때까지 마약중독과 각종 사고를 일으킨 문제아였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인물이지만, 주로 흑인이 이끌었던 재즈 사에서 드물게 이름을 남긴 백인 음악가로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이라는 대작을 남긴,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음악이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렇다고 침묵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숱한 음악은, 형언할 수 없는 우리 마음을 영원히 대변할 소중한 매개체가 되어줄 것입니다.

영화샤인은?

  • 개 요

    멜로, 로맨스 | 미국 | 105분 | 1997.1.25 개봉

  • 감 독

    스콧 힉스

  • 출 연

    제프리 러쉬(데이빗 헬프갓), 노아 테일러(청년 데이빗 헬프갓), 아민 뮬러 스탈(피터)

  • 등 급

    15세 관람가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눈부신 감동 실화.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10년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던 그가, 운명적으로 마주한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기 시작한다.

전문 사진 출처 : 영화 <샤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 davidhelfgot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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