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소비심리의 비밀

B급이 더 끌리는 이유

사는 것이 어쩐지 조금 퍽퍽하게 느껴지는 세상. 버스 정류장에 대문짝만한 크기로 적힌 위트 있는 광고 문구를 보면 살며시 웃음이 납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재치 있는 가사로 귓가를 어른거리게 하는 CM송이나, 조금 과하게 솔직할 법한 대화를 주고받는 CF를 보면 괜히 유쾌한 마음이 들고요. 어떻게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너무 ‘격’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대중 사이에서 끊임없이 화젯거리가 되며 즐거움을 주는 것을 보면 꽤 괜찮은 전략인 것도 같습니다. 그럴싸한 ‘S급’에 이끌리기보다, ‘B급’에 이끌리는 우리의 마음. 과연, 왜일까요?

지루한 일상 속, 스치는 ‘재미’를 전파하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흘러가는 무료한 일상.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 무료함을 달래봅니다.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는 식으로 말이죠. 권태를 극복하기 위한 숱한 과정 속 어쩌다 맞닥뜨린 재미는 메마른 땅 단비 같이 느껴집니다. 바로, ‘B급’ 콘텐츠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저 짧은 문구일 뿐인데, 사람 몇 명 나오는 영상일 뿐인데, 단순한 노래일 뿐인데 직설적인 표현과 재치 있는 솜씨에 실소가 터져 나오고 맙니다.

©동원참치 CF©셀럽파이브

어떤 방식으로든 지루한 일상에 웃음을 자연스레 자아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의 머리와 마음속엔 한 편의 스토리와 재치 있는 멘트가 자리 잡습니다. “너 그 광고 봤어?”, “되게 웃기더라”, “센스 있던데?” 어느덧 재미있는 자극은 널리 퍼져나가, 입담을 타고 퍼져갑니다. 웃음의 전염 속도는 생각보다 아주 빠릅니다. 무난함과 평범함은 잠시 내려놓고, B급을 선택한 콘텐츠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자랑하며 세상 곳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B급은 곧 개성, 다 같은 그럴싸함 속 더 새롭다

한때 광고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곧 상품을 잘 홍보하는 ‘정석’이라 여겨졌습니다. 빛나는 미모와 젊음을 자랑하는 모델이 착용하고 있는 옷, 액세서리, 타고 있는 차까지. 제품을 구매하면 나 자신의 가치도 그 모습만큼 올라가는 것만 같은, ‘그럴싸함’을 드러내는 것이죠. 하지만 시대는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멋지고 예쁘다는 것은 이제 개인의 척도에 따라 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단순히 고급스러움으로 단장한 것보다, 개성을 잘 드러내는 사람만이 진정한 트렌드를 좇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죠.

©충주시청©신성통상

‘B급’ 감성을 내세우는 상품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오만가지 상품이 모두 아름다움으로만 치장해왔다면, 이제는 그 아름다움 속 개성을 반짝반짝 빛내는 존재가 더욱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추구하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차츰 바뀌어 가는 만큼, 대중은 획일화된 아름다움보다 통통 튀는 매력을 뽐내는 상품에 눈길을 돌립니다. 누구나 탐낼만한 고급스러움은 없지만, 나의 흥미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상품이 더 매력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죠.

일탈, 솔직, 서툼… 현대인의 ‘미덕’ 갖춘 B급

EBS 사상 첫 연습생 캐릭터로 등장한 펭귄, ‘펭수’가 존칭을 생략하고 거침없이 회사 대표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사람들은 묘한 희열감을 느낍니다.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는 한 배달사 광고에 사람들은 무릎을 치며 치킨을 시키고요. 선을 넘나드는 언어유희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튜버의 동영상은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조회 수를 기록합니다.

©Youtube 자이언트 펭TV©배달의민족

어쩌면 B급 감성을 향한 열광은, 일상의 괴로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B급이라는 명목하에 탄생한 콘텐츠는 고개 숙여야만 하는 계급 사회에서 대신 속 시원한 말을 퍼부어주고, 사회에서 추구하는 미(美)의 기준을 뒤엎기도 하며, 살면서 할 수 없는 솔직한 언행을 과감하게 보여주니까요. 조금 모자라고 부족해 보여도, 혹은 다소 평범해도 말하고 싶은 바를 명확하게 표현해내는 B급. 나 자신을 투영해보아도 묘한 통쾌함이 느껴지고, 힘든 처지를 낙관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직장, 돈, 연애, 육아, 아름다움… 수많은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현대인은 소소한 일탈을 꿈꿉니다. B급 감성은 평범함을 도리어 강점을 내세우며 조금 센 솔직함과 어설픈 모습을 과감히 드러내며, 우리네 일상과도 닿아있는 지점을 되새기는 동시에 고됨을 잊을 수 있는 웃음을 선사하죠.

‘B급’에 숨겨진 미덕은, 아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위로 한마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럴싸하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