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추천정보

‘나도 한 번 해볼까?’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쓰레기 없는 생활)

글·사진허유정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저자>

이리도 무섭고 긴 장마는 처음이었습니다. 한 달간 하늘에서 비가 멈추질 않더니, 장마가 지나갈 때쯤 태풍이 찾아왔죠.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큰 태풍을 한 달 사이 2번이나 겪은 우리. 널뛰는 날씨를 보면 마치 멋대로 주파수가 바뀌는 고장 난 라디오 같았습니다. 기후 위기란 말이 피부로 와닿는 요즘. 다들 뭔가 심상치 않다고 하니 환경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죠. 하지만 곁에는 여전히 배달음식 용기가 쌓여 있고, 쓰레기통에는 일회용품이 가득합니다. 이 위기를 늦추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기꺼이 선택하는 불편함, 제로웨이스트

기후 문제가 짙어지며 2010년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된 흐름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제로웨이스트. ZERO(0) + WASTE(쓰레기) 두 단어가 합쳐진 말로,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거나 또는 최대한 쓰레기를 줄여보려는 생활 방식을 말합니다. 저는 3년 전 독일 여행에서 이 말을 처음 들었어요. 휴가차 떠난 함부르크에서 우연히 ‘제로웨이스트 샵’을 알게 됐고, 이곳에서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았죠. 제로웨이스트 샵은 말 그대로 쓰레기가 없는 가게. 여기서 파는 모든 물건은 포장이 없고, 필요하다면 직접 용기를 들고 와 가져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처음 ‘유리병을 꺼내 샴푸를 덜어가는 대학생’, ‘통에 원두를 담아가는 할머니’, ‘샴푸 대신 샴푸 비누를 사는 청년’을 보았습니다. 당시 에코백 챙기기도 버겁던 저에게는 생경한 풍경들이었죠.

독일에서 만난 쓰레기를 줄이는 일상은 생각보다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환경보호란 그런 일 같았어요. ‘어느 단체에 소속된 특별한 누군가의 일’,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야만 하는 일’. 하지만 거기서 만난 대학생, 할머니 모두는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또 환경을 위한 실천도 특별한 게 아니었죠. 핸드워시 대신 비누를 쓰고, 일회용 잔 대신 텀블러를 쓰는 것도 환경보호란 걸 그때 알았습니다. 나뿐 아닌 모두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하는 사람들. 3년 전 우연한 이 만남 덕에 저는 지금까지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고, 일상 곳곳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집부터 시작해보기

집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곳은 어디일까요? 집에서 무심코 쓰는 플라스틱은 어떤 게 있을까요? 쓰레기를 줄이고 싶다면 가장 먼저 점검할 건, ‘집’. 지금부터 집 공간별로 해볼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실천 방법을 알아볼게요.

부엌

1장보기 전 에코백&용기 챙기기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날은 역시 장 본 날. 마트를 다녀와 정리하면 알맹이보다 더 큰 비닐, 플라스틱 더미가 금방 쌓여 버리죠. 그래서 장을 보러 갈 때면 몇 가지를 준비합니다. 에코백과 새 비닐을 쓰지 않기 위해 집에 있는 비닐이나 주머니를 챙기고, 할 수 있다면 빈 용기까지 챙겨갑니다.

채소와 야채는 최대한 새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가져간 비닐에 담아 옵니다. 두부, 해산물, 육류 같은 젖어 있는 식자재를 살 때는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하죠. 스테인리스 용기는 가볍고 파손 위험이 없어 휴대하기 좋습니다. 때로는 이 용기에 김밥,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을 포장해 와 먹기도 합니다.

새 비닐 대신 주머니 스테인리스 용기

2천연 수세미와 설거지 비누

싱크대에서도 쉽게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사용하는 건 천연 식물 수세미입니다. 천연 수세미는 한 덩이 약 1~2천 원대로 가격도 저렴하고 거품이 풍성하게 나 일반 수세미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또 플라스틱 통에 담긴 세제 대신 설거지 비누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사용 후 쓰레기가 남지 않아서도 좋지만, 화학 성분을 많이 함유한 세제보다 안전하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천연 수세미&설거지 비누 실리콘 백

3지퍼백 대신 다회용품

지퍼백 대신 실리콘 백, 반찬통 같은 다회용품을 활용합니다. 특히 실리콘 백은 지퍼백과 가장 유사해 자주 손이 가는 살림이죠. 지퍼백처럼 유연해 냉장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3천 번 이상 재사용 가능합니다.

욕실

1나무칫솔

자주 쓰고 자주 버리는 대표적인 욕실 소모품, 칫솔. 칫솔도 플라스틱 아닌 나무로 만든 제품이 나옵니다. ‘나무 칫솔’을 검색해보면 여러 제품이 나오고, 가격도 비싸지 않습니다. 1개당 900원대부터 3천 원대로 다양한 가격대가 있고, 나무 질감이 한층 더 따뜻한 욕실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나무칫솔 삼푸바&린스바

2샴푸바 & 린스바

일반 샴푸, 린스 대신 샴푸 비누와 린스 비누를 사용합니다. 샴푸바, 린스바라고도 부르며 최근 시중에 다양한 브랜드 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비누의 장점은 다 쓴 후 처리가 쉽다는 것. 일반 샴푸는 쓰고 나면 용기를 세척해 버리는 게 쉽지 않지만, 비누는 그냥 사라져 없어집니다. 또 펌핑 형식 샴푸는 옆으로 튀거나 흘러 주변이 지저분해지기도 하지만 비누는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욕실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실 & 분리수거

1휴지 대신 손수건

집 안 곳곳에 휴지 대신 손수건을 놓는 것도 좋은 실천입니다. 사실 휴지는 필요해서 쓰기보다 곁에 있어 습관적으로 사용할 때가 더 많습니다. 휴지 대신 손수건을 놓으면 쓸데없이 낭비하는 휴지를 아낄 수도 있고 또 휴지 쓰레기가 나오지 않아 주변도 쾌적해집니다. 요즘은 휴지 대신 부드러운 천을 넣어 ‘티슈’처럼 뽑아 쓰는 ‘와입스’란 제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휴지 대신 손수건이나 행주 기름 묻은 종이도 재활용 대상일까?

2분리수거 앱 추천

‘이건 뭐로 배출해야 하지?’ 분리수거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기름 묻은 종이, 철이 섞인 용기 같은 애매한 쓰레기를 만난다면 환경부 앱, ‘내 손안의 분리배출’을 추천합니다. 앱을 통해 올바른 배출법을 알 수 있고, 궁금한 점을 묻고 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기름 묻은 종이, 철이 섞인 용기는 일반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고 해요.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분리배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지금까지 쓰레기 줄이는 팁을 적었지만, 사실 저도 완벽한 실천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목이 마르면 생수를 사기도 하고, 바쁠 때는 물티슈를 꺼내 쓰기도 하죠.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할 때는 완벽할 수 없다는 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완벽보다 중요한 건 예전과 달리 불편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만든다는 거 아닐까요? 좋은 일도 꾸준히 해야 더 좋고, 꾸준하려면 무엇보다 즐거워야 합니다. 혹시 지금 쓰레기를 줄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우선 완벽함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쓰레기를 줄이며 제 일상은 더 풍성해지고 반질반질 윤이 났습니다. 쓰레기가 치워진 자리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둘 수 있었고, 작은 일 하나라도 실천한 날이면 스스로가 참 뿌듯했죠. 제로웨이스트는 분명 자존감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여전히 지구에 빚을 지고 살아가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보려는 노력.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나라도 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날 하루는 기분 좋게 잠이 듭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꼭 경험해보신다면 좋겠어요.
저처럼 소심한 환경쟁이도 10명, 100명, 1000명이 모이면 어벤져스 영웅 한 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정보가 도움이 되셨다면 주변에 공유해주세요.